역사의 재발견···’일어난 것’과 ‘기록’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역사는 ‘일어난 것’과 ‘기록’ 두 가지로 해석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없어지면 ‘일어난 일로서의 역사’도 사라지게 되는 것은 역사철학의 기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바로 이를 노린 것이다. KBS에서 제공한 장기 기획 ‘역사 스페셜’은 역사의 지평을 넓혔다.
역사가 넓어지는 것은 몇 가지 원인에 의해서다. 첫째, 시간적 요소다. 현대는 당연히 과거에 비해 역사의 지평을 넓게 한다. 1970년대 이후 획기적인 발견이 많이 있었다. 신라 안압지, 백제 무령왕릉, 백제 풍납토성 등은 역사를 풍부하게 하였다.
둘째, 공간적 요소다. 발해 영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하는데 러시아의 발해에 대한 관심 증대는 발해 역사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하고 백제와 일본의 자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셋째는 방법론의 발전이다. 탄소를 확인하여 연대를 밝히는 방법은 현대에 이르러 널리 활용되기 시작하였고 DNA 분석방법은 최근에야 널리 활용되고 있다. 물론 컴퓨터 발달은 모든 연구 분야에 기여하고 있다.
넷째, 연구 인력의 확대다. 팔만대장경 글자 수가 5200만 자라고 하는데 불교계의 엄청난 노력으로 전산화되어, 대장경은 대중에 가깝게 다가왔다.
황룡사 9층탑은 남아 있는 기단 규모만 보더라도 가히 당唐 장안長安의 대안탑大雁塔과 방불하다고 할 수 있다. 익산 미륵사 석탑도 당시 동양 최대였다. 불국사는 경덕왕 때 김대성이 조성한 것이다. 오늘의 불국사가 대중에 다가서도록 정비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1970년대 초는 경제가 막 피어날 때였다. 박정희의 공력은 가히 김대성에 견줄 만하다.
대마도對馬島가 우리 땅이라는 인식은 오래 되었다. 부산 바로 눈앞에 있는 대마도에 가보면 한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를 알 수 있고, 태종이 이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대마도는 본래 한국 땅”이라고 주장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대마도가 실질적으로 일본영토가 된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다.
서희가 소손녕의 80만 거란군을 물리친 것은 거란과 송, 고려의 각축에서 송이 고려에 기대하던 바를 이용한 것이며, 발해가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릴 만큼 강성했던 것은 거란, 백제, 신라, 일본의 긴장관계를 이용한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외교가 드물게 작용한 시기다. 광해군이 명明 청淸 교체기에 강홍립姜弘立에게 준 외교적 지혜는 독특한 것이다.
1984년 합참에서 전두환 대통령에 보고한 ‘백두산 계획’에서는 우리 민족의 무대를 한반도와 만주를 넘어 발해와 통일신라를 하나로 파악한 남북국시대라 하였다. 이는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의 범주를 포함한 것이다. 여기서 고구려가 발해로 이어져서 만주가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2009년 7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방영된 KBS의 ‘역사 스페셜’은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이를 시청함으로써 국민들은 보다 풍부하고 공정한 사관을 가질 수 있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최근 발견된 자료도 역사에 투입할 수 있다.
굳이 통일된 국사교과서를 만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같은 기획은 앞으로도 계속되고 보완돼야 한다. 또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로도 번역되어 널리 세계에 알려야 한다.
21세기 한국사 교과서는 100년전에 조선총독부가 만든 심상소학국사와 완전 똑같죠 식민사관이 극복은 커녕 지금도 재생산중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국민들만 모르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