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등단 뒷얘기②류자효] 부산고 2년때 가명으로 당선, 청마 유치진·살매 김태홍 심사
‘신춘문예’. 한때 이 네 음절만큼 문학도들을 설레게 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시나 소설 등을 통해 문학가로 등단할 수 있는 길이 넓어졌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사 신춘문예는 시인이나 소설을 꿈꾸는 문학도들의 희망의 언덕이자 절망의 골짜기나 다름없었다. 올해도 주요 일간지들은 시, 소설, 희곡, 평론, 시조 등의 장르에 걸쳐 신춘문예를 통해 신인들을 대거 등단시켰다. <아시아엔>은 시전문 월간지 <유심>(편집고문 설악무산 조오현 스님, 발행인 겸 편집인 김도종)과 함께 ‘시인들의 등단 뒷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
[아시아엔=유자효 시인, 구상선생기념사업회장] 1964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집에 배달돼 오는 부산일보에서 신춘문예 작품 모집공고를 보고 시를 응모하였다. 약간의 소심함이 작용해 가명으로 작품을 보냈다. 그런데 신년호에 실린 심사평에서 내 작품이 최종심에 올랐던 것을 알게 되었다.
심사위원은 청마 유치환 시인과 살매 김태홍 시인이었다. 김태홍 선생은 내가 다니는 부산고의 국어 교사이시다. 고3 신학기에 교무실에 들렀다가 선생을 뵙고 쭈볏쭈볏하며 그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왜 본명을 밝히지 않았느냐?”며 야단을 치시는 것이었다. “청마 선생께서 살매가 알아서 하라고 해서 거의 내가 다 했는데···”라며 아쉬워하셨다.
1967년, 대학교 1학년이던 나는 신아일보의 시조 한시 지상백일장에 응모하여 입상하였다. 노산 이은상 선생께서 심사를 하셨는데 중앙지에 내 작품이 실린 최초의 경험이었다.
신아일보와의 인연은 좀 더 이어져 1968년 신춘문예 시부에 입선하였다. 미당 서정주 선생이 심사를 하셨는데, 당선작 있는 가작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하였다. 한 음보를 한 행으로 한, 내 딴에는 실험 의식을 갖고 쓴 작품이었다. 심사를 하신 초정 김상옥 선생을 시상식장에서 뵈었다. 선생께서는 심사평에서 내 작품을 ‘형태상의 새로운 시도’라고 평하셨다.
서울사대 불어과 학생이던 나는 국어과의 ‘시조개론’ 강의를 도강하였다. 당시 이화여대 교수셨던 월하 이태극 선생이 출강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사대문학회의 신상철군이 합평회에 낸 내 시조작품을 봐달라며 월하 선생께 드리는 것이 아닌가?
내 작품에 대한 강평으로 그날 수업을 하신 선생께서는 작품을 가져가셨다. 그리고는 선생께서 내시던 시조문학에 초회 추천을 하셨다.
한 번 추천을 받으니 완료를 하고 싶었다. 나는 1969년에 2회 추천을 받고 군대에 갔다. 천료를 하고 싶은 욕심으로 3회 작품을 보내고 입대하였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1970년에 3회째 작품을 게재하면서 천료를 하지 않고 다시 2회로 하신 것이었다. 2회천을 두 번 받은 것이다. 당시 시조문학은 부정기적으로 나오고 있었고, 졸병 생활에 허덕이던 나는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고참이 되니 시간 여유가 났다. 나는 추천을 끝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써서 선생께 보냈다. 제대 말년이던 1972년, 천료 소감을 보내라는 우편을 병영에서 받았다. 그래서 나는 네 번 만에 추천이 완료된 특이한 경우가 됐다.
1985년, 월하 선생과 박병순, 한춘섭 선생의 편저로 <한국시조 큰사전>이 출간되었다. 그 사전에는 나의 등단 연도가 1970년으로 되어 있다. 월하 선생께서 내 경우는 두 번째 2회 추천을 천료로 정리하셨구나하는 짐작만 했다.
1976년, 현대시학의 시조 월평 한달치가 내 작품 ‘부산 1953년’으로만 채워진 적이 있었다. 나는 근무지 부산에서 월평을 쓴 서벌 시인을 만났다. 선생은 나를 보더니 “당신은 1968년에 이미 등단한 사람이니 신춘문예 같은데 투고할 생각을 말고 기성문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1964년에서 1972년까지, 긴 세월이었다. 남들만큼 화려하진 못했어도 내 나름으로는 힘들고 지루했던 시간이었다.
혼례
1
모란 병(甁) 와룡 촛대
대추 유과 월병 대두(大豆)
화문석 수(繡)방석
두벌 교배(交拜) 북향 재배(再拜)
눈부신 화관(花冠)의 구슬
떨려 오는 수줍음
2
소리 없이 떨어지는
하얀 깁 치맛자락
화촉이 잠든 사창(紗窓)
달빛 차서 흐르면
무심히 넘나든 바람
맘 설레어 가고 없고
3
종가(宗家)
연지(蓮池)는
새도록 수런대어
사리의 바다로
별의 무리 쓸리고
홀연히 옷깃 여미며
일어서는 신부여
류자효 1968년 〈신아일보〉 등단. 시집 <아직>등과 한국대표명시선100 <아버지의 힘> 우리시대현대시조100인선 <데이트> 시선집 <성스러운 뼈>가 있음.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지용회장, 구상선생기념사업회장, 시와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