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등단 뒷얘기⑧김신용] 술집서 술마시다 시인 되다···농담처럼, 그러나 진짜인걸 어쩌랴

[아시아엔=김신용 시인] 우리 문단에는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가 있다. 흔히 신춘문예도 있고 시인 지망생의 투고를 받아 뽑는 각각의 문예지 현상 공모도 있고, 신인 추천 제도도 있다. 그러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시인이 되는 사람도 있다. 꼭 농담처럼 말이다.

내가 그랬다. 나는 생전 처음 찾아든 서울 인사동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시인이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시인이 되었다. 신춘문예나 그 흔한 문예지에 투고도 하지 않고 말이다.

그때, 인사동에는 ‘실비집’이라는 이름의 한 술집이 있었다. 나는 그 술집을 한 화가 때문에 알았다. 그때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새로 만들어지는 대학로에서 보도블럭을 까는 일을 하다가 그 화가를 만났었다. 그는 서울대병원 뒷담벼락에 빨래집게로 그림을 걸어 놓고 노상 전시회를 하고 있던 가난한 화가였다.

그가 어느 날, 값싸고 술맛 좋은 술집이 있다며 나를 데려간 곳이, 지금의 사동면옥이 있는 좁다란 골목의 막다른 길의 끝에 있는 ‘실비집’이었다. 그 실비집은 인사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선 기와집의 내부를 술청으로 개조한 술집이었는데, 값싼 실비집이라는 이름답게 가난한 시인 지망생이나 화가 소설가 할 것 없이 갖가지 예술의 꿈을 품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소주나 막걸리에 김치 깍두기를 앞에 놓고 가난하고 절박한 영혼을 달래는 모습들이었다. 때로는 철학적인 고담준론에 현실적인 시국 토론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곤 했다. 나는 난생 처음 마주치는 그 분위기가 좋아, 비가 오거나 일을 쉬는 날이면 찾아들어 구석진 자리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때, 내 군용 야전점퍼의 윗 호주머니에는 누런 갱지에 볼펜으로 눌러 쓴 습작시가 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꺼내보며 혼자 술을 마시고는 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습작시를 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때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다가와 지금 읽고 있는 시를 좀 보여줄 수 없느냐고 했다. 나는 기꺼이 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사람이 다시 다가와 자신은 그 당시 전봉건 선생이 주간으로 있는 <현대시학>에 초회 추천을 받은 시인 지망생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며, 자신도 인사동을 뜨내기로 드나들며 다른 무명시인들의 시를 많이 보았지만 이 시가 너무 좋다며, 이 시를 자신에게 좀 빌려줄 수 없느냐고 했다. 나는 기꺼이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전화가 왔다. 그때의 나는 서울역 앞의 양동 무허가 하숙방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전화는 주인집 방에 있는 것이었다. 아마 그때 나는 전화가 없어 주인집 방의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날, 7호실 전화 받아요, 하는 소리에 슬리퍼를 끌며 주인집 방으로 가 전화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전화기에는 실비집에서 시를 건네준 그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대뜸 내게 형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낮 12시에 그동안 써놓은 시를 모두 가지고 인사동의 ‘귀천’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귀천’은 그때,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께서 열고 있던 조그만 찻집의 이름이었다. 나는 이것도 훗날에 알았다.

어쨌든 그 날, 나는 약속대로 귀천으로 나갔었다. 대학노트에 빼곡히 적어놓은 습작시를 들고-. 그런데 약속 시간에 또 뜻밖에도 최승호 시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지금 어디에 살며 하는 일은 무엇인지 이것저것을 물었고, 나는 양동에 살며 오랫동안 청계천의 지게꾼이었다는 것을 얘기하자 더 이상 묻지도 않고 내가 가지고 나갔던 대학노트를 들고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때 고려원에서 새로 창간된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대학노트에 빼곡히 적혀있던 시들은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로 출간되었다.

나는 그렇게 시인이 되었다. 그러니까 대학로에서 보도블럭을 깔다가 한 화가를 만나 우연히 찾아든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나는 시인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꼭 농담처럼. 그래, 농담처럼.

 

양동시편2 -뼉다귀집

뼉다귀집을 아시는 지요

지금은 헐리고 없어진 양동 골목에 있었지요

구정물이 뚝뚝 듣는 주인 할머니는

새벽이면 남대문 시장 바닥에서 주워온

돼지뼈를 고아서 술국밥으로 파는 술집이었지요

뉘 입에선지 모르지만 그냥 뼉다귀집으로 불리우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어쩌다 살점이라도 뜯고 싶은 사람이 들렀다가는

찌그러진 그릇과 곰팡내 나는 술청 안을

파리와 바퀴벌레들이 거미줄의 현을 고르며 유유롭고

훔친 자리를 도리어 더럽힐 것 같은

걸레 한 움큼 할머니의 꼴을 보고는 질겁을 하고

뒤돌아서는 그런 술집이지만요

첫새벽 할머니는 뼈다귀를 뿌연 뼛물이 우러나오도록

고아서 종일토록 뿌연 뼛물이 희게 맑아질 때까지

맑아진 뼛물이 다시 투명해질 때까지

밤새도록 폭 고아서 아침이 오면

어쩌다 붙은 살점까지도 국물이 되어버린

그 뼈다귀를 핥기 위해

뼈만 앙상한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들지요

날품팔이지게꾼부랑자쪼록꾼뚜쟁이시라이꾼날라리똥치꼬지꾼

오로지 몸을 버려야 오늘을 살아남을 그런 사람들에게

몸 보하는 디는 요 궁물이 제일이랑께 하며

언제나 반겨 맞아주는 할머니를 보면요

양동이 이 땅의 조그만 종기일 때부터

곪아 난치의 환부가 되어버린 오늘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뼈다귀를 고으며 늙어온 할머니의

뼛국물을 할짝이며

우리는 얼마나 그 국물이 되고 싶었던지

뼈다귀 하나로 펄펄 끓는 국솥 속에 얼마나

분신하고 싶었던지, 지금은 힐튼 호텔의 휘황한 불빛이

머큐롬처럼 쏟아져 내리고, 포크레인이 환부를 긁어내고

거기 균처럼 꿈틀거리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어둠 속, 이 땅

어디엔가 반드시 살아 있을 양동의

그 뼉다귀집을 아시는지요

김신용 1988년 <현대시사상> 등단.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 <도장골 시편> <잉어> 등과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 <새를 아세요> 등. 천상병시상, 노작문학상,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상, 고양 행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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