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등단 뒷얘기⑤박덕규] 1980년 12월 어느 눈 오는 날의 기억

[아시아엔=박덕규 시인,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1980년 12월 초, 눈이 내리는 날 용산의 어느 제본소에서 갓 발간된 동인지 <시운동> 창간호를 받아 택시에 실었다. H, A 그리고 내가 창립 동인이었고, J시인이 발간사인 한국문학사의 담당직원으로 동승했다.

넷은 동숭동 학림다방으로 갔다. 각자 들 수 있는 만큼의 책 부수였다.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 마침 비어 있는 톱밥 난로 가까이 자리했다. 고전음악이 운치 있게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책을 들춰 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다방 안 손님들에게 책을 한 권씩 나눠주었다.

J시인이 책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는 곧 즉석 낭독회에 들어갔다. 세 사람이 돌아가며 시를 낭독했다. 사람들은 그리 의아스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시인으로서의 내 출발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1980년 1월, 대한민국은 호기롭게 새해를 열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이어 12.12사태가 일어났지만, 아직까지 소위 신군부의 집권 의도는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민주화의 봄이었다. 1월1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H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A가 시 당선으로 당당히 얼굴을 내밀었다. 내 소설은 어느 신문사 본심에 한 줄 거론되고만 상태였다. 개학을 하고 나서부터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4월 들어 학내 농성이 시작되었다.

휴강 사태가 빚어지는 동안 나는 거기 참여하는 둥 마는 둥하면서 한쪽에서 시창작 동아리를 만들어 시작에 열을 올렸다. 5.18이 일어났다. 계엄령 아래 출입이 통제된 학교 앞을 어슬렁거리면서 시를 썼고 그걸 정돈해 계간문예지 M에 투고한 상태였다.

7월 초 M사의 연락을 받고 찾아갔다. M의 가을 특집호에 신인으로 발표되니 교정을 봐오라고 했다. 며칠 뒤 교정을 봐서 넘겼다. 8월 초 고향 집에 내려가 있는데 라디오에서 계엄사령부에서 언론통폐합 조치를 단행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M사도 여러 다른 잡지와 함께 폐간된다는 얘기였다.

눈앞에 둔 시인의 자리를 나는 앉지 못했다. 그럴 무렵 선배 H가 발의했다. “한국문학은 동인지 운동으로 일어서야 한다. 한국 현대문학의 역사는 동인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우리 시는 지금 진정한 ‘나’의 자리를 잃었다. ‘나’를 찾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즉, 새 동인을 창립해 활동하자는 얘기였다. 나는 동의했고, A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인이 될 만한 몇 신인을 더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우선 셋으로 동인이 결성되었고, 논의 끝에 셋 모두 대학생문학상으로 인연이 깊은 한국문학사를 찾아갔다. 주간 L시인이 ‘반 자비’를 결정하면서 동인지 작명에 관여해 주었다. 여러 이름이 나왔지만 ‘시운동’으로 결정되었다. 700부 제작에 셋이 일부씩 돈을 내기로 했다.

1980년 M 가을호에 발표될 내 시는 ‘비 오는 날’ ‘하현달’ ‘데탕트 80’ 세 편이었다. 나는 이 대신에 ‘낙하산’ 외 9편의 시를 실었다. 내 등단 지면이 1980년 <시운동> 창간호이고 등단작이 ‘낙하산’이 된 것은 이런 연유다.

1984년 11월, 폐간으로 인연을 맺은 M사에서 첫 시집 <아름다운 사냥>이 나왔고, 나는 곧 입대했다. 민주화의 봄은 사라졌고 암울한 청춘은 끝나지 않았으나, 그래도 분명히 다른 어떤 기운이 코끝을 스치곤 했다.

낙하산

1

몇 포기 잡풀 붙잡고 그림같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지만

단 한 줄의 깜장 크레용으로 나는

지워지고, 그리고 다시 나타나 보일 때까지

박쥐처럼 숨어 지내기만 하였다.

한 걸음씩 봄밤은 짙어 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꽃이 피고

번져 갔다. 4월과 5월의

잠자는 병동 쪽으로

혈압이 급격히 기울어졌다.

2

저지대에 살면서 불어댄 풍선,

바람 앞에 나서면 하늘로 치솟아 가던

우리의 횡경막은 얼마나 부풀까.

만유인력과 낙하 운동을 배우던 시절

측정할 수 없는 한계 밖의 공간에서부터

초가지붕 위로 아파트 옥상 위로

떨어뜨려진 돌멩이같이

가장 자유로운 곳이라던 무중력에서도

뻥뻥뻥

풍선에 구멍이 뚫려서

단 한 줄의 깜장 크레용으로 나는 지워지고

다시 하늘 끝을

어떤 색깔로 그려 놓을까.

우리의 꿈은

늘상 시계 밖으로 밀려나 있다가

어느 밤 낮은 체위로 누워 상상하면

절망인 채로

뉴턴의 사과열매만 자꾸 떨어졌다.

3

꽃들은 거꾸로 매달려서

시나브로 시나브로

시들어 갔다, 꽃들의 향기만 남기고.

마침내 그들의 향기마저 시들었을 때

나는 차라리

인력 이전의 곳으로 내리고 싶다.

박덕규 1980년 <시운동> 등단. 이후 평론, 소설을 발표하며 다장르 작가로 활동. 시집 <아름다운 사냥> <골목을 나는 나비>.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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