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등단 뒷얘기④서정춘] 심사위원 서정주에게 “용꿈 꾸고 당선됐습니다” 일갈
[아시아엔=서정춘 시인] 그렇다. 1968년 1월1일은 내가 시인이 되겠다며 10여년간 고군분투하다가 뜻을 이룬 날이다. 뜻밖의 실수가 행운을 가져 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신아일보에 시조를, 동아일보사에는 시를 응모했었다. 그런데 신아일보사로부터 “당선을 축하한다, 당선소감을 써보내라”는 전문을 받았다. 그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곧 이어 실수를 깨달았다. 두 신문사로 보낸 겉봉의 주소를 바꿔 써서 보낸 실수였다.
솔직히 말하지만 시조는 아무래도 크게 자신이 없어, 발행 부수가 쳐진 신아일보사로, 자신이 만만했던 시는 동아일보사로 응모를 했는데, 그런 실수가 빚어지고 만 것이었다. 생각건대 시가 제대로 동아일보사로 갔을 경우 내 시는 당선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해 마종하는 동아일보, 경향신문을 석권했고, 나는 그 두 군데 작품 앞에 간담이 서늘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 시상식이 끝나고 나는 마포 공덕동으로 서정주 선생을 찾아뵈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선생께서는 사모님을 불러 “저 국화꽃 대궁이 옆에 묻어 둔 포도주 항아리를 통째 뽑아 걸러 오시오” 하셨고,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약봉공 후손인데 자네는?” 하시길래 저는 사가공 후손이라고 하자 “아하 내가 사가공 후손이었으면 좀더 으쓱할 텐데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이 다음에 시를 써 와서 내 눈에 들거들랑 저 산호 지팡이를 물러주겠네” 하셨다.
이때는 선생께서는 술이 취하셨고, 나는 술의 힘을 빌어 의아스럽던 생각 하나를 선생께 여쭈었다. 응모작 5편 중 ‘나비祭’에 기대를 했었는데 ‘잠자리 날다’에 낙점을 주신 점이 궁금하다고 했더니, “그 나비제는 그 역시 신춘문예 작품들에서 비슷비슷하게 저질러진 것이었지, 내가 아니면 그 잠자리는 못 날았네”하시다가 엉거주춤 일어나셨다.
웬걸!!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무슨 헛것을 본 듯 휘젓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미치셨나 싶었는데 곧 자리에 앉아 하신 말씀이 “내 머리 위로 잠자리가 날았는데 자네는 못 보았나? 내가 그 시 ‘잠자리 날다’를 뽑은 것은, 그 시 중에 ‘모시빛깔 물맛 나는 시과(翅果)빛깔’에 그만 내가 찬탄했거든. 그러한 것들은 내가 아니면 볼 수가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사모님이 들어오셔서 술이 많이 취했으니 그만들 일어나시라고 했다. 나는 놓칠세라, 못다 한 말을 남기고 자리를 물렀다.
“선생님, 실은 당선 통지를 받은 전날 밤 황룡이 저 집 초가를 덮쳐버렸습니다”
잠자리 날다
아세요
빠른 힘을 가지고
눈에
귀를 듣는
볕소리
부스러기 리듬인지
모시빛깔
물맛 나는
시과翅果(시과)빛깔인지
아세요
날은 일로
빼빼마른 氣分(기분)에
고비사막에서
물을 뜯는
참 시원한 일인지
아세요
바람 맛에
힘이 자란
한 마리
樂器(악기)라고 불러놓고
리듬을 쓰는
글자인지
아세요
*심사평
徐廷春씨의 ‘잠자리 날다’는 그 중에서는 출중하게 뛰어난 것이다. 선자(選者)와 성명 두 자 같다는 우연한 사실 때문에 묻히게 할 수는 없었다. 당선자 서정춘씨와 선자는 서로 일면식도 없고 단 한번의 서신거래도 없는 사이인 것을 여기 분명히 밝혀 둔다.
서정춘씨의 ‘잠자리 날다’는 이미지들의 시적 배치도 우수하게 되었으려니와 그 상상의 풍부한 점이 먼저 시인의 근본자격을 보이고 있어 좋았다. 시의 정리가 상당히 길든 자취가 보여 앞이 기대된다. <서정주>
*당선소감
당선이라는 게 아무래도 겁이 난다. 앞으로 어떻게 좋은 시를 쓸 것이며 시를 써서 돈을 번다는 얘기는 못 들었으니, 이제 나의 골방 신세를 뒤엎을 일과 더불어 각성할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서정춘 1968년 〈신아일보〉로 등단. 시집으로 <죽편> 등이 있음. 박용래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