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의 시진핑시대 해법⑬] ‘도광양회’에서 ‘굴기’로···위안화 기축통화·7천만 절대빈곤 ‘극복과제’

[아시아엔=안동일 <아시아엔> ‘동북아’ 전문기자] 예견은 됐지만 시진핑 주석의 굴기(堀起)가 예사롭지 않다. “당당하게 일어선다”는 굴기는 “빛을 감추고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는 종래의 도광양회(韜光養晦)와 대별된다.

시진핑 주석은 △9월말 미국 방문 △10월초 유엔방문 △10월말 18기 5중전회(10.26~29)에 이어 △11월초 싱가포르에서 대만 마잉주 총통과의 회합까지 괄목할 굴기의 행보를 이어 오고 있다. 시 주석은 15일부터 터키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담에서 굴기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미국과 유엔에 가서 할 말 다하고, 5중전회를 통해 자신의 첫 임기 정책 추진에 힘을 실은 후, 홍콩과 마카오의 귀속 후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만과의 양안관계에서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은 여세를 몰아 중국이 세계 최강의 대국이 됐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시 주석은 터키 남서부 안탈리아에서 열린 G20정상회담 기조연설에서 “중국이 세계경제가 어려웠던 시기에 세계 경제성장의 최대 50%까지를 담당했었다”며 중국경제의 세계 경제 기여도를 강조한 뒤 “올해도 중국은 전 세계 경제성장의 약 30%를 담당할 것이며 앞으로도 세계경제 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대국은 반드시 거시경제 정책을 결정할 때 타국에 대한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고 투명도를 제고해야 한다”며 “중국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금리 정책과 관련한 일침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 다음날인 16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별도로 만나 자신의 ‘책임론 발언’의 확실한 지지를 얻어냈다.

특히 푸틴은 중국이 내년 G20의장국으로서 국제경제와 금융협력 활성화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위안화의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 편입이 확실시 되면서 시 주석의 행보에 더 힘을 실어 주고 있다.

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최근인 13일, 실무진의 보고서를 인용해 “위안화가 SDR에 편입하기 위한 요건을 모두 충족시켰다”고 밝혔다.

미국 달러화와 유럽연합(EU)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에 이어 위안화가 세계 다섯번째 주요 화폐로 공식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중국 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며 앞으로 5년간 전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가운데 위안화 표시 자산이 총 1조 달러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진핑 주석이 큰 소리를 칠만도 하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화려하게 굴기하는 시 주석 앞에는 적지 않은 난관과 난제들이 얽혀 있고 적잖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안팎으로 다 그렇다.

위안화 기축통화 편입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위안화가 달러화를 넘어서거나 적어도 대등한 지위를 갖는 것이 현 단계에서는 요원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투자자들이 해당국가의 사법 시스템과 중앙은행의 독립성 등을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은 이 같은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역시 소프트 파워가 문제라는 얘기다. 세계의 공장역할을 한 것은 맞는 얘기지만 공장은 회사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개 공장장은 최고 경영자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

하드파워에서도 마냥 팡파레를 올릴 수 있는 형국이 아니다. 실은 화룡점정의 무대였던 터키에서 꽤 큰 파열음이 들려왔다. 터키가 ‘중국판 사드(THAAD)’로 불리는 장거리 방공미사일 시스템 훙치(紅旗)9 수입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액수로 따지면 34억 달러(약 3조 98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가 무산된 것이다. 훙치9는 저렴한 가격과 기술이전 혜택으로 미국 패트리엇 미사일을 제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토 동맹국들은 동맹국 일원인 터키에 중국산 미사일 방어망이 도입되면 나토의 무기체계에 일대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터키를 압박해 입찰 결과를 취소시켰다.

터키의 구매 포기는 앞으로 각국의 중국산 무기 도입문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아직 지구촌 각 나라, 특히 어느 정도 구매력을 가진 친서방 제국은 미국과 나토와 같은 기존 실력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역시 소프트파워의 문제다.

중국내부로 눈을 돌려 보면 시 주석 굴기의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 짙다.

따지고 보면 모두 경제문제, 먹고 사는 문제다. 만기를 친람하고 있는 그이기에 책임도 한 몸에 쏠린다. 이번 18기 5중전회에서는 ‘국민경제와 사회발전을 위한 제13차 5개년 계획’(13·5 규획, 2016∼2020년)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건의사항을 의결했다.

시진핑은 중국 공산당의 입을 빌어 스스로에게 창당 100주년이 되는 시점 이전에 중국의 ‘전면적인 소강(小康)사회 달성’이라는 임무를 가장 강도 높게 부여했다. 14억 가까운 중국인을 모두 먹고사는 데 걱정 없고 약간의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국제사회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절대 다수의 국민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나아지며 빈곤기준도 해마다 상향 조정돼 2009년엔 가계 월소득 1196위안, 2010년엔 1274위안이 됐고 2011년에는 현재의 2300위안(약 42만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빈곤 인구는 개혁·개방 이후 30여년 동안 6억명 이상이 줄어 2013년 말 8247만명을 기록했는데 2014년 한 해에만 1200만명이 빈곤에서 벗어나 현재는 7천만명 정도가 절대 빈곤에 남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번 중전회의에서 보고된 수치다. (하지만 세계은행은 2014년 현재 중국의 빈곤층을 1억7천만으로 보고 있다)

시진핑은 이 7천만 빈곤 인구를 내년에 시작해 2020년에 끝나게 되는 제13차 5개년계획 기간 동안 모두 없애겠다는 야심이다. 매달 100만명씩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시진핑은 “빈곤 추방에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왕양(汪洋) 부총리를 조장으로 하는 국무원 빈곤 퇴치 영도소조를 확대 개편했다. 부조장 6명을 교체하고 새로운 멤버 9명을 확충해 빈곤 퇴치 소조 구성을 37개 부서로 확대했다. 중국 정부부처는 거의 모두 망라된 셈으로 시 주석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현재의 빈곤 인구가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이거나 고산지대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시진핑은 노동력 상실자는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끌어안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빈곤 군중은 아예 거주지 자체를 산업 잠재력이 있는 곳으로 바꾸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가난을 돕기 전에 가난 극복의 의지부터 다지게 하라”(扶貧先扶志)고 주문하고 있다. 교육을 강조해 빈곤의 대물림을 끊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모든 인구가 한꺼번에 가난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수천 년 중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 오래된 격언이다.

굴기의 시진핑이 과연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그의 숙원인 소프트파워 굴기의 획기적인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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