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근혜-시진핑 역대 최고 한중관계 뿌리는 소동파-추사 김정희 벼루문화서 비롯”

중국 최고 벼루조각가 우이구 “한중 청년들, 벼루에 먹 갈며?힐링하라”

한뼘 벼루에 삼라만상을 담다···”알리바바 마윈 회장도 내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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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벼루 조각가’로 알려진 우리구

 

[아시아엔=안동일 동북아 전문기자] 한중관계가 역대 최상의 우호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요즘 중국의 고급예술가 겸 학자가 한국을 찾았다. 중국 ‘최고의 벼루 조각가’ ‘제일의 연학 연구자’로 꼽히는 우리구(吳笠谷)씨가 바로 장본인이다.

우리구가 ‘벼루에 삼라만상을 담다’(萬上一泓)를 타이틀로 8월20~31일 경기 과천 추사박물관에서 벼루전시회를 열었다. 전시에는 창작벼루 23점, 추사 인물초상 벼루 10점, 명청대(明淸代) 명장의 유물벼루 13점 등 97점이 소개됐다.

전시 마지막 날인 30일과 31일 이틀에 걸쳐 우리구를 만났다. 그와의 대담에는 선문대 중문과 김규선 교수와 추사 박물관 허홍범 학예사가 함께 했다.

-벼루는 문방사우의 으뜸이며, 선비의 변치 않는 믿음을 상징한다. 특히 섬세한 조각이 담긴 벼루는 서화, 조각, 금석 예술의 집대성이다. 일찍부터 동아시아에서 벼루는 탐구를 아우른 경쟁적 소장의 대상이 돼왔다.

“중국과 한국 모두 예의지국이고 서예를 숭상하는 문화국이다. 양국은 유구한 문화교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벼루야말로 양국 문화교류와 선비(군자)정신의 상징이다. 특히 고려의 벼루는 송나라의 대서화가이자 연학자인 미불(米?, 1051~1107)의 <연사>(硯史)에 그 가치가 뛰어나다고 기록돼 있다.”

-당신은 중국 최고의 벼루 소장가로 꼽힌다. 2011년 벼루에 관한 이론 연구와 실천을 융합시킨 <연학>(硯學)의 개념을 제창해 중국에서 ‘벼루문화’를 일깨우고 있는 선봉장으로 불린다. 이번 추사박물관 전시는 개인적으로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오래전부터 추사체의 굵고 가늠을 자류롭게 넘나드는 종횡과 힘차고 거칠면서 옛스러움이 넘실대는 분위기를 매우 좋아했다. 열개의 벼루를 구멍 내면서 늘 좋은 벼루를 찿았던 추사 선생이야말로 내게는 기이한 봉우리들로 웅장함을 자랑하는 황산과 같이 빛나는 존재다.”

-중국 동남부 휘주(안휘성) 흡현 출신으로 그 유명한 황산이 당신 고향 옆에 우뚝 서있다고 들었다.

“추사 선생의 스승인 완원 선생 역시 휘주 출신으로 휘파 고증학의 영수다. ‘해동통유’라 불린 추사 김정희 선생도 그 학문의 뿌리는 휘주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적인 인연 아니겠는가?”

-거기에 더해 당신은 추사와 자신과의 인연에 소문난 벼루 애장가인 동파 소식 선생이 자리하고 있다며 기염을 토했다던데.

“추사는 자신의 삿갓 쓴 모습이 담주(단저우)로 유배 간 입극옹(笠?翁, 삿갓 쓰고 나막신 신은 노인) 소동파와 닮고, 자신의 행적과 처지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내 이름인 ‘입곡’(笠谷)은 삿갓 쓰고 깊은 산골에 기거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동파와 추사 선생의 신산(辛酸)을 생각한다. 서화와 벼루의 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생의 고독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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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초상이 담긴 벼루 작품

-당신의 벼루는 ‘문인연’(文人硯)이라 불린다. ‘천인합일’(天人合日)을 추구해야 할 최고의 경지라고 여겨 돌로 예술을 펼치고 칼로 붓을 대신하여 문인의 마음을 합친다는 의미라고 들었다.

“예술에서는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고, 학문에서는 지조를 지키면서 평생 수많은 굴곡을 겪으며 소동파의 인문정신을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삼은 추사의 모습에서 나는 큰 공명을 느꼈다. 그래서 특별히 ‘추사기념 벼루’를 제작했다. 이 벼루엔 추사의 중국문화에 대한 우호의 마음과 추사의 인품 및 예술의 경지에 대한 나의 존경을 담았다.”

-추사기념 벼루는 추사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하던데.

“벼루는 중국과 한국의 선인들이 학문을 다지기 위한 도구였다. 소동파 선생은 동방의 고전학자들의 본보기일 뿐만 아니라 벼루 수집가였고 벼루 연구가였다. 동파 선생은 ‘나는 밭이 없어 깨진 벼루를 먹고 산다’는 명언도 남겼다. 추사 선생은 한국 역사에서 불세출의 서화가이자 대문호다. 추사 또한 ‘평생 열 개의 벼루를 바닥 내고 천 자루의 붓을 뭉툭하게 만들었다’는 말씀을 남겼다. 이는 선생의 일생과 벼루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임을 뜻하는 말이 아닐까”

-이런 인연의 바탕과 저간의 절차탁마 위에 정립된 것이 당신의 ‘한중벼루문화 함양론’ 아닌가?

“문화란 인류가 사회와 역사발전과정에서 만들어 낸 물질과 정신의 총합이다. 벼루는 돌과 진흙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돌과 진흙 자체는 문화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의 손을 거쳐 다듬어지고 인간의 가치관이 덧씌워진 이후에야 비로소 ‘문화’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벼루문화는 중국과 한국 공통의 문화유산이자 세계 공통의 문화유산이다.”

-당신은 ‘연학’ 개념을 확립하고 고양하는 것은 시대를 가르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연학을 부흥시키고 벼루문화를 확장시켜 선대가 남겨준 벼루의 인문정신을 파고들어 더욱 발전시키는 것, 그리하여 한중 전통문화의 정수가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본다. 벼루문화와 연학으로 풍부해진 한국의 선비정신과 중국의 군자정신은 현대세계의 모든 문제점과 고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양국 문화의 최고 무기, 영어로 ‘킬러 콘텐츠’라고 본다.”

그래서 그런지 당신의 벼루 작품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벼이삭과 고즈넉한 정자, 유장한 폭포 아래서 여유자적 뱃놀이 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그는 자신을 ‘각자’(刻者)라고 자칭하며 작업실을 ‘작운루’(斫雲樓)라고 지었다. 구름을 자르는 내 작품들은 베이징 호사가들의 선망이 됐다. 몇 안 되는 소장자엔 알리바바 마윈 회장도 있다.

-당신의 이번 벼루전시에 대한 소감을 들려달라.

“벼루의 밭에 풍년이 들다(硯田豊年)라는 말이 있다. 황금은 백년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교류가 이번에 전시된 벼루들처럼 다양하고 풍부하고 반석처럼 단단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양국 국민들의 우애가 벼루를 갈아 만든 먹처럼 점점 더 진하고 두터워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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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개막일 그는 전시장을 찾은 추궈홍 중국대사, 주잉제 중국문화원장, 신계용 과천시장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의원 등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큰 소리로 자작시를 읊었다.

“풍성한 벼루 밭에서, 삼한과 인연 맺는다 /서로 도와 문화의 세계를 여는, 한국과 중국 /가을빛 한없이 좋은 때 / 산은 높고 물은 유유히 흐른다.”

현재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구는 국가개방대학 서화예술교육연구원 교수, 중앙문화관리간부학원 객좌교수, 벼루문화연합회 주임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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