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부회장 취재후기] ‘접근 실패’ 내탓 혹은 데스크의 무리한 요구?
[아시아엔=최정아 기자] 2년차 기자인 내겐 말 그대로 ‘임파서블 미션’이었다. 16일 오후 서울 광진구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알리바바 코리안스타일 패션위크’ 행사에서 주최측인 알리바바그룹의 장젠펑 부회장과 사진을 함께 찍으라는 데스크의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행사 시작 불과 5시간을 앞두고서 였다. <아시아엔> 동료인 파키스탄 출신의 라훌 아이자즈 사진기자와 함께 불안한 마음으로 현장으로 향했다.
이날 행사는 알리바바그룹이 주최하고 한경닷컴, 호바국제무역유한회사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20개 국가의 기업과 허브 구축을 위해 알리바바가 계획한 첫 번째 글로벌 행사였다. 주한중국대사관, 한국패션협회,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제일모직, 이랜드, 세정, 한스킨 등이 이날 행사를 후원한 대형이벤트였다.
나와 라훌 기자는 행사 시작 2시간 전,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비스타홀에 도착해 혹시 VIP를 위해 또다른 입구가 있는지 살펴봤다. 관계자에게 물으니 포토월에서 사진을 촬영한 뒤 행사장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후 7시. 드디어 이랜드, 삼성, 세정, 미도 등 한국의 대표 패션업계 주요인사들과 함께 장젠펑 부회장이 나타났다. 장 부회장이 포토월에 서자 중국 취재진들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장 부회장은 패션업계 주요인사와 함께 브랜드관을 둘러본 뒤 곧바로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화려한 조명아래 행사가 시작됐다. 산업자원통산부와 주한중국대사관측 축사에 이어, 장젠펑 부회장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장젠펑 부회장은 “수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한류 연예인들의 영향력도 크다. 그만큼 양국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라고 했다. 장 부회장은 “알리바바의 타오바오, 티몰, 쥐화산 등 사이트를 통해 중국인들이 한국의 고품질 상품을 더 쉽게 살 수 있게 됐다”라고 연설을 이어갔다. .
장 부회장의 기조연설이 끝나고 화려한 패션쇼가 시작됐다. 배우 장동건이 한스킨 뷰티쇼 소개를, 이범수 아나운서가 내레이션을 진행했다. 걸그룹 티아라는 열정적으로 축하공연을 선보였다.
행사장 뒤편에 있었지만 패션쇼를 흡족히 바라보는 장 부회장의 눈빛이 느껴졌다. 하지만 데스크의 지시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데스크 지시는 이랬다.
“우리가 단독으로 취재하는 것이 아니면, 기사는 연합뉴스나 뉴시스 등의 기사를 참고해 쓰면 된다. 사진은 라훌 사진기자가 찍은 걸로 해도 되지만, 그 역시 통신사 것을 써도 좋다. 중요한 것은 다른 매체와 차별화하는 것이고, 앞으로 알리바바와 관계를 지속해 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사장을 만나 우리 기자들과 그가 같이 함께 사진을 찍고 그동안 <매거진N>에 보도된 마윈 기사와 <아시아엔>에 실린 마윈 시리즈를 컬러 복사해 전달하는 것이다. 쉽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 차별화할 수 있다. 같이 찍은 사진을 보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데스크는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면 회사로 돌아오지 말라”고 했고 나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을 한 상태였다. 데스크의 얼굴이 떠오르고 화난 듯한 음성이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장 부회장 주위로 한국 패션업계 주요인사들이 둘러앉았다. 자리는 미리 예약돼 있었다. 그 주위엔 중국에서 이번 취재를 위해 온 중국기자들과 일부 한국기자들의 자리가 마련됐다.
필자와 라훌은 사전 예약명단에 들지 못해 뒷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패션쇼가 시작됐고 행사는 순서대로 착착 진행됐다. 패션쇼가 늘 그렇듯 무대위로 모델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며 동선을 이어갔다.
부회장은 행사에 꽤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에게 다가가려 해도 경호원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여러 명이 가로막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곳을 뚫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데스크 얼굴이 떠오르며 불안감만 더 커졌다. “지시 완수 못하면 회사 돌아오지 말라”는 말이 귓속을 계속 맴돌았다.
행사가 끝나고 조명이 잠깐 어두워지면서 북적거리는 틈에 장 부회장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결국 기자는 부회장 얼굴만 멀찌감치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시간, ‘미션 임파서블’에 대해 다시 복기해 본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데스크 지시가 무리한 것이었나? 나의 기자근성이 한참 모자란 탓일까? 아니면 사전에 주최측에 적극적으로 일정을 확인하고 동선을 파악하는 등 충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건 아닐까?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해내야 하는 게 기자들의 숙명이란 말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취재후기를 쓰면서도 내 머릿속은 여지껏 복잡하기만 하다. 기사거리가 있으면 지옥에도 달려든다는 기자 선배들 말은 정녕 사실인가 하는 불안한 의구심을 언제나 떨칠 수 있을지?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 기자, 참 만만한 직업 아니라는 걸. 보도자료 주는 것 적당히 옮겨쓰고 홍보대행사 안내대로 따라다니며 보여주는 것만 써서는 독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요원하기만 한 일이란 것을. 목숨까지 바치며 IS 취재를 위해 국경을 넘는 기자들도 있는데, 내가 너무 쉽게 포기한 건 아닌지?
이런 생각도 해봤다. 데스크의 지시는 장젠펑 부회장과 사진 찍는 것이 최종목표였을까, 아니면 그런 도발 없이는 ‘받아쓰기 기자’를 결코 뛰어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기 위한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