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의 시진핑시대 해법⑫] 박근혜-오바마 회견 바라보는 시진핑 눈빛은?

[아시아엔=안동일 <아시아엔> 동북아 전문기자] 소프트파워란 무력이나 경제력이 아닌 그 어떤 힘으로 상대방이나 상대국을 자신 또는 자국의 의도와 이익에 부합 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힘을 말한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조지프 나이가 만든 개념이자 용어다. 그 어떤 힘에는 당연히 문화적인 힘이 포함되지만 딱히 그것만은 아니다.

소프트 파워를 가지려는 시진핑 주석의 노력이 최근 들어 유난히 돋보이고 있다. 시 주석은 이달 초 제70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새로운 국제관계를 천명했다. 중국은 패권(Hegemony)이나 확장(Expansion)정책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크고 힘센 나라나 부자 나라가 작고, 약하고, 가난한 나라를 못살게 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동맹(Alliance)보다는 동반자 관계(Partnership)를 선호한다”면서, “승자가 모두를 취하는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연한 레토릭에 틀림없다.

지난해 프랑스를 국빈 자격으로 방문했을 때 시진핑은 나폴레옹이 중국을 ‘잠자는 사자’라고 말했던 것을 비유해 이런 말을 했다. “황제(나폴레옹)는 잠자는 사자가 깨어나면 세계가 두려움에 떨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중국이라는 사자가 깨어났다. 하지만 그 사자는 ‘평화롭고 친근하며, 교양있는 사자’다.”

중국과 영국이 아편전쟁 이후 170년간의 역사적 앙금을 전히 털어내고 ‘신(新)밀월시대’를 열고 있는 것에도 시진핑의 소프트파워가 작동하고 있다고 얘기된다.

시 주석은 20일 영국을 방문하는데 여왕이 직접 영접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밀월 분위기와 맞물려 중국 정부는 첫 역외 위안화 표시 국채 발행지로 런던을 선택했다. 영국으로서는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철도·원자력 발전소 등의 투자금을 확보하고, 중국은 위안화를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기축통화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실리를 서로 챙기는 셈이다.

지난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방미 때 아베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보였던 ‘밀월 행보’에 못지않은 밀월을 과시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 무명 여성 과학자의 올해 노벨상 수상도 소프트파워의 신장과 관련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처럼 경제 및 군사적 힘이 하루가 다르게 확대되는 나라는 자칫 주변국을 긴장시켜 이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형성하게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자국 중국이 보다 덜 무섭게 보이도록 하는 전략을 반드시 세울 필요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유난히 부드러움(소프트)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프트파워를 키우겠다는 중국의 야심 앞에는 큰 장벽들이 있다.

작금의 시 주석과 중국의 노력이 적지않은 효과를 본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여러 나라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회원으로 가입시켰고, 국가주석의 해외방문 기간 동안 수십억 달러의 원조금을 나눠줬다. 일각에선 소프트파워 신장에 쏟는 노력에 관한 한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어떤 중국학자는 “중국이 대략 연간 100억 달러를 대외 선전에 쓴다”고 추정했다. 미국은 지난해 공공외교 부문에 6억7천만 달러를 썼을 뿐이다.

하지만 북미, 유럽, 인도, 일본에서의 여론조사 결과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견해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중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지역은 남미와 아프리카 정도다. 이곳은 중국과 영토분쟁이 없고 인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그런 지역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사회기반시설 사업에 노동력을 수입하는 중국 관행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

국가가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얻는 원천은 주로 세 가지다. △문화(호소력이 있는 분야) △정치적 가치(합당해 보이고 도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는 곳) △대외정책이 그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문화적, 경제적 강점을 강조해 왔으나 정작 정치적 측면이 그런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최근 소프트파워 이론을 처음 제창한 장본인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자신의 신디케이트 컬럼을 통해 중국의 소프트 파워에 대해 평가했다.

나이 교수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의 소프트파워가 쏟는 노력만큼 커지지 못하는 데에 크게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국수주의로도 치환될 수 있는 중화민족주의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높은 수치의 경제적 성장을 강조하는 한편 중화주의를 내세웠다. 중국이 남중국해 등지에서 이웃국가들을 적으로 돌리는 정책을 펼치면서 국수주의를 강조한 결과 시진핑의 ‘차이니스 드림’이 지닌 보편적 매력은 계속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둘째 걸림돌은 중국이 민간에 대한 검열을 풀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밝혔듯 중국 공산당은 국가의 소프트파워가 주로 개인, 특히 사적 영역 및 민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전세계를 매료시킬 것이라고 믿는 고전적인 문화 아이콘을 홍보하고 종종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면서 정부가 소프트파워의 주요 원천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선 정보가 남아돌 정도로 넘친다. 부족한 건 관심이다. 관심은 정보에 신뢰성이 있어야 움직인다. 그리고 정부의 선전 중에서 믿을 만한 건 거의 없다. 중국은 신화통신과 CCTV를 CNN, BBC의 경쟁자로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믿음직스럽지 않은 중국의 선전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 조지프 나이 교수의 진단이다.

미국은 중국과 달리 대부분의 소프트파워를 정부가 아닌 민간 영역에서 얻는다. 그 영역은 대학과 재단에서 할리우드와 대중문화까지 모든 걸 포괄한다. 중국은 아직 미국과 견줄 만큼 할리우드나 미국 대학들의 규모에 맞는 세계적 문화산업을 갖추지 못했다. 더 중요한 건,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상당 부분 만들어내는 NGO가 중국에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원조 프로그램은 일견 성공적이고 건설적이다. 중국의 경제는 강해졌고, 많은 사람들은 중국 전통문화에 감탄한다. 중국이 자국의 소프트파워가 지닌 거대한 잠재력을 보여주고 싶다면 자국과 해외에서 행하고 있는 정책들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웃나라들에 대한 주장을 줄이고 시민사회가 온전히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비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중국이 국수적 중화주의를 부채질하고 통제의 고삐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한 중국의 소프트파워는 언제나 성장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세계적 석학의 지적을 시 주석의 중국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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