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의 시진핑시대 해법 ③] 장쩌민, 후진타오, 그리고 시진핑

상하이방·공청단 등 상대 ‘호랑이 사냥’ 진행…“시황제 지위 굳혀”

[아시아엔=안동일 칼럼니스트/동아시아 연구가]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부패의 사슬을 끊겠다면서 사정의 고삐를 잔뜩 죄고 있는 중국 시진핑 입장에서는 전쟁이란 표현에 발끈하겠지만 홍장(紅帳)의 권력전쟁 속도가 전 같지 않다. 그리고 정보공개 또한 예전에 비하면 빛의 속도에 버금한다. 예전 ‘만만디’ 혹은 ‘죽의 장막’ 시절 중국소식을 알려면 퍼즐맞추기와 다름 없었다. 홍장 내부의 권력전쟁은 특히 그랬다.

권력투쟁을 넘어 권력전쟁이다. 서방세계에선 파워게임이나 선거에 져도 창피하고 분통은 터지지만 집에 가서 애라도 보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죽느냐 사느냐의 치열한 전쟁일 수밖에 없다.

홍장 내부 권력투쟁은 주인이 바뀔 때마다 늘 있어왔다. 1989년 베이징에 입성한 장쩌민 상하이사단이 기존 토박이 권력인 천시둥 베이징 시장을 부패혐의로 숙청했을 때 판결이 나기까지 9년이 걸렸다. 2002년 후진타오 공청단 세력이 집권해 상하이방의 천량위 서기를 몰아내는 데도 5년 걸렸다. 그러니 최근 일련의 일들은 규모와 속도면에서 놀랄 수밖에 없다. 홍장 맞은편 천안문에는 마오쩌뚱 초상 오른쪽에 ‘전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는 붉은 구호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이 계급투쟁을 포기하지 않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표상이다.

“전세계 무산계급은 단결하라” 하면서도 자신들의 단결은 때에 따라 자의적이다. 세상 어디나 파벌은 있게 마련이다. 혈연 혹은 지연으로 그리고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꽌시의 나라 중국에서는 파벌이 더욱 중요하다.

공산당 견제는 공산당 자신뿐
공산당 같은 공식조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공산당이 유일한 정치조직인데다 공직자 선임을 포함한 내부사정이 완벽하게 흑막에 싸여있기 때문이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게 되어 있다. 중국공산당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유일한 합법조직이다. 내부는 부패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숙청되는 관리들의 죄목은 모두 부패다. 공산당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공산당 자신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식적으로는 당내 파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호언하지만 정치에 관심 없는 일반인에게도 딴파이(공청단), 타이당(태자당), 쌍빵(상하이방)이라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다. 상하이방은 198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장쩌민 전 주석을 정점으로 한 상하이 출신들이다. 장파(江派)라고도 부른다. 상하이방은 1980년대 중반부터 2012년 현 시진핑 체제가 들어서기까지 중국정치의 막강 실세로서 정치이념보다 경제에 중점을 두고 전 중국을 상하이처럼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러다 보니 떡고물이 많이 튀었다.

시 주석의 ‘호랑이 사냥’은 상하이방의 정계·군부·재계 인사를 겨냥해 주도면밀하게 진행돼왔다. 저우융캉 전 서기와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궈보슝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장파다. 아들의 부패의혹에 휘말린 허궈창 전 상무위원 역시 범 상하이방으로 분류된다.

시진핑 체제 출범 후 장관급 숙청인사 55명 가운데 그중 50명이 상하이방 출신이다.

공청단은 공산주의청년단의 약칭으로 당의 전위조직이다. 단파는 공청단 출신을 일컫는다. 후진타오 전 주석, 후아요방 전 서기등이 해당한다. 중국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그 순간 모두 공청단원이 된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종이에 문제학생 이름을 적어서 탈락시킨다. 이같은 서바이벌 형식으로 초, 중, 고교에 올라가면서 계속 탈락시키고 생존자가 대학에 입학하면 그제서야 공청단 딱지를 떼고 공산당원 자격을 갖게 된다. 그런데 공청단을 지도 관리 하는 각급 위원회는 성인들이 그 실무를 맡는다. 현재 정치적으로 통용되는 단파는 이 공청단 위원회 혹은 사무국 출신들이다. 문화혁명을 겪은 젊은 공산당원 엘리트들로서 해외유학 등을 통해 견문을 넓힌 이들이 많이 포진돼있다. 공청단 핵심인원 대부분이 공학도나 과학도 출신이다. 외국문물에 개방적이며 중국개혁 필요성을 실감한 세대다. 이들은 1990년대부터 중국개방이 시작되면서 급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공청단 수장 후 진타오가 중국 지도자가 되면서 당내에서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공산당 내 파벌 중에 규모가 가장 큰 세력이다. 3대 파벌 중에 유일하게 당내 공식단체다. 현 리커창 총리도 단파다.

막강했던 공청단도 요즈음 속이 편하지 않다. 후진타오 은퇴 이후 단파의 리더격인 링지화(令計劃) 공산당 통일전선부장의 낙마를 지켜봐야만 하기 때문이다. 구랍 22일 신화통신은 “링지화 부장이 엄중한 기율위반 혐의로 조직(組織)조사를 받고 있다”고 공식 보도했다. 링은 후진타오 전 주석의 비서실장을 지낸 오른팔이다. 링 부장은 이미 낙마한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등과 함께 시진핑 주석의 집권을 반대한 ‘신(新) 4인방’으로 꼽혀왔다.

링지화가 낙마함에 따라 시 주석에게 반기를 들었던 ‘신 4인방’이 모두 숙청됐다고 중화권 언론은 전하고 있다. 미국 <타임>지는 “시 주석이 원로들과의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해 ‘시 황제’ 지위를 사실상 굳혔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태자당은 중국 공산당혁명 원로의 자제와 친인척들로 구성된 정파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부모의 후광을 제대로 받는 집단이다. 덩샤오핑, 류사오치의 자녀 및 사위를 비롯해 약 4000명이 당정군 및 재계 요직에 포진해 있다. 시왕동맹의 시진핑과 왕치산이 바로 태자당이다. 태자당은 그간 ‘쌍방’이나 ‘단파’에 비해 위세가 미미했다.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 태자당 출신 시진핑이 주석에 오르면서 날개를 달았다.

실제 시 체제의 출범은 ‘장파’ ‘단파’의 타협의 산물로 어부지리 성격이 강했다. 단파 후진타오는 리커창을 차기 대권주자로 강력히 밀었지만 장파에서 끈질기게 반대해 양쪽에서 모두 용납할 수 있는 시진핑으로 낙점됐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18기 전국인민대회 체제의 밑그림을 그린 2012년 여름 홍장 베이다허 회의는 와호(臥虎,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 시진핑에게 날개까지 달아준 것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고 그 총구는 당이 관리한다”는 마오쩌둥의 지론처럼 군사위 주석직은 당 주석(총서기)보다 더 막강한 자리다. 그래서 마오는 죽을 때까지 군사위 주석직을 놓지 않았고 덩샤오핑과 장쩌민도 군사위만은 한동안 후임자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웅크리던 호랑이 날개까지 달아
집권 10년간 장쩌민의 시집살이에 시달렸던 후진타오로서는 자신도 즉각 물러날 테니 장을 비롯한 원로들도 같이 물러나 새 체제에 간섭하지 말자는 특단을 관철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쾌도난마로 달려가는 시황제의 출현이다. 시주석이 군사위 주석을 겸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과 같은 군부개혁을 포함한 사정 드라이브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후진타오, 장쩌민 두 전임 주석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였구나’ 하며 가슴을 칠까, 일국을 경영했던 지도자답게 ‘계속 정도를 걸으라’며 박수를 칠까? 과거 시진핑 주석은 <홍루몽> 구절을 자주 인용했다. “사람은 유명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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