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의 시진핑시대 해법 ⑥] 누나 치차오차오 재산문제 ‘블룸버그통신’ 비판 날세워

중국 시중쉰 전 부총리 생전에 찍은 가족사진. 오른쪽 끝에 붉은색 옷을 입은 시진핑 주석의 큰누나 시차오차오가 포즈를 잡고 있다. 오른쪽 끝에 윗줄 가운데가 시 주석, 오른쪽이 동생 위안핑, 그 옆이 큰 매형 덩자구이, 시주석 왼편이 둘째 누나 안안 부부. 아래 줄 중앙은 시중쉰 부부. 왼쪽은 고모다.
중국 시중쉰 전 부총리 생전에 찍은 가족사진. 오른쪽 끝에 붉은색 옷을 입은 시진핑 주석의 큰누나 시차오차오가 포즈를 잡고 있다. 오른쪽 끝에 윗줄 가운데가 시 주석, 오른쪽이 동생 위안핑, 그 옆이 큰 매형 덩자구이, 시주석 왼편이 둘째 누나 안안 부부. 아래 줄 중앙은 시중쉰 부부. 왼쪽은 고모다.

[시 주석의 가족문제 (중)] 문제는 친누이 둘과 남동생이다. 누이들은 재산문제로, 남동생은?처신문제로 세인의 구설에 오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시 주석이 총서기에 오른 직후인 2012년 11월, 큰 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와 매형 덩자구이(鄧家貴) 부부의 재산총액이 4억달러(약 46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한 이래 계속해서 그 내역들을 입수한 문서들과 함께 공개하고 있다.

[아시아엔=안동일 칼럼니스트/동아시아연구가] 서방언론 가운데 가장 먼저 시주석 일가의 재산문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한 <블룸버그통신>은 계속 이 문제를 추적 하고 있다. 이 통신은 “시 주석의 누이 차오차오 부부가 2012년부터 올해까지 부동산과 광산을 중심으로 계속 처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유력 상장 주식과 베이징의 호화 아파트단지, 홍콩 소재 빌라 등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벌써 이들 재산의 상당부분이 국외 조세피난처로 빼돌려졌다”고 폭로하고 있다.

중국 언론에 거의 보도는 되지 않았으나 이 보도의 충격파는 크다. 그런 만큼 과연 폭로가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의문도 동시에 일고 있기는 하다.

시 주석은 형제가 많은 편이다. 부친 시중쉰이 두번 결혼했기 때문이다. 시중쉰은 전처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뒀는데 이들이 시진핑의 배다른 형인 시푸핑(富平)과 누나인 시허핑(和平), 시첸핑(乾平)이다. 시중쉰은 중국공산당 시베이국(西北局) 제2서기였던 1944년, 팔로군 여전사이던 치신(齊心)에게 열렬히 구애한 끝에 결혼한다.

젊고 예쁜 치신은 산시(陝西) 쑤이더사범학교(綏德) 학생신분으로 당에 들어 왔다. 시중쉰은 자신보다 13살 연하인 이 여학생에게 편지를 써 구애했고 마침내 뜻을 이뤘단다. 옌안시절에는 시중쉰처럼 ‘혁명의 필요’에 따라 시골의 전처를 버리고 뜻을 같이하는 젊고 예쁜 여학생과 재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혁명 1세대 유력 지도자 가운데 소문난 애처가 저우언라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사가 그렇다.

시중쉰은 치신과의 사이에 차오차오(橋橋)와 안안(安安) 등 두 딸을 뒀다. 다음으로 두 아들 진핑(近平)과 위안핑(遠平)을 낳았다. 차오차오는 1949년 옌안 중차오(中橋)에서 태어났고 안안은 1951년 시안(西安)에서 태어났다. 1953년 시진핑이 태어나고 그 무렵 시중쉰은 정무원 비서장으로 승진해 저우언라이 총리의 최측근 인사가 됐다. 어린 진핑은 저우 총리를 숙부라고 불렀다. 3년 뒤 위안핑이 태어났다. 차오와 안안을 제외한 시진핑 형제들은 모두 베이핑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에 모두 핑(平)자가 들어갔다고 한다. 베이징을 당시는 베이핑(北平)으로 불렀다.

시진핑은 이복 형제, 친형제 들과 함께 베이징에서 자랐고 사이가 좋았다. 큰형 시푸핑은 뒤에 시정닝(習正寧)으로 개명했다. 그 뒤 하이난(海南)성 사법청장(司法廳長)을 지내고 1998년 사망했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 검소하면서도 강직했다고 알려져 있다.

시진핑의 큰 이복 누나 시허핑은 문화혁명 기간 중 세상을 떴다. 당시 30살이 안 된 나이였다. 당시 진핑은 옌안(延安)에서 생산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방공호를 파다가 편지를 받고는 대성통곡을 했다. 둘째 이복 누나 시첸핑은 지금도 생존해 있으나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큰 누나 치차오차오와 자형

문제는 친누이 둘과 남동생이다. 누이들은 재산문제로, 남동생은 여자관계며 처신문제로 세인의 구설에 오르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시 주석이 총서기에 오른 직후인 2012년 11월, 큰 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와 매형 덩자구이(鄧家貴) 부부의 재산총액이 4억달러(약 46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한 이래 계속해서 그 내역들을 입수한 문서들과 함께 공개하고 있다.

이들의 부동산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베이징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불리는 중민공사(中民公社)의 ‘관위안’(觀緣)이다. 베이징의 서쪽 중심지인 처궁좡대로(車公莊大路)에 세워진 호화건물로 총 대지가 4만6천㎡, 총 건축면적은 18만5천㎡. 동쪽으로는 서부 제2순환도로에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처궁좡대로에 맞닿으며, 서쪽으로는 궈이호텔(國誼賓館)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시즈먼(西直門) 밖의 대로에 인접해 있다. 지하철역과 가까우며 교통이 편리하다. 주변에 12개 부처와 당 위원회가 있어 중앙 정치, 경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부동산업자라면 이런 금싸라기땅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아직 중국에서 토지는 국가소유로 일반인은 장기 사용권만을 갖는다.

‘관위안’은 위치가 대단히 좋아 불티나게 팔렸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부자 아니면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다. 집값은 최고 ㎡당 인민폐 3만위안(약 540만원)이었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타워펠리스 정도 되는 부동산을 대통령 누나 부부가 소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니 부정이 개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구설수가 없을 수 없다.

차오차오는 성을 치씨로 쓰고 있다. 그녀가 중학교 다니던 무렵 부총리였던 아버지 시중쉰이 ‘시’(習)는 매우 드문 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가 쉽다며 어머니의 성을 따라 딸의 성을 치(齊)로 바꾸게 했다. 그만큼 시중쉰은 근검하면서도 자제력이 뛰어났다.

차오차오도 문혁 중에는 내몽고의 생산건설 현장에서 적잖은 고생을 했다. 시중쉰이 복권되어 광둥(廣東)성에서 서기로 정무를 주관할 때 그녀를 해방군대학(軍醫大學)에 입학하도록 했다. 그녀는 졸업 후 무장경찰부대 계통에서 일하다가 덩자구이(鄧家貴)를 만나 결혼해 1980년대 후반 홍콩으로 이주했다. 영국에서 반환하기 이전의 일이다. 이후 부동산 사업가로 변신해 홍콩과 인근 선전(深?) 등지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남편은 선전의 지하철 건설사업과 역사며 쇼핑지구 건설사업을 독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이들 부부가 베이징에 돌아와 설립한 본격적인 부동산 개발회사가 바로 중민신부동산개발유한공사(北京中民信房地山開發有限公社)다. 치차오차오가 이사장, 남편 덩자구이가 총경리를 맡았다.

또 치차오차오는 칭화대학교 최고경영자(EMBA) 과정을 이수해, 광둥, 홍콩, 마카오 지역 칭화대동창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지금도 명예회장이라고 한다. 동생 시진핑과 같이 칭화대 인맥인 셈이다.

이들 부부의 재산 형성과정에서 시 주석이 직접 관여했다거나 압력을 행사했다는 흔적에 대해선 불룸버그통신과 탐사언론들이 불을 켜고 뒤졌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부친 시중쉰이 광동성 서기를 지낸 점과 동생 시진핑이 계속 묵직하게 부상하는 실력자였다는 점에서 의혹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는다. 실제 베이징 아파트 건설 당시 큰 인명사고가 발생했는데, 별탈 없이 무마됐다고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자체 입수한 공문서들을 통해 “치차오차오 가족이 희토류와 희귀금속 관련 기업의 지분 18%와 또 다른 기술 관련 기업의 지분 2000만 달러 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스마트탄 제조에 쓰이는 희귀금속 가격이 중국의 공급제한으로 급등하면서 이들 부부가 큰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 통신은 “시 주석이 당 고위층으로 계속 올라가면서 가족들의 사업영역도 광물, 휴대폰 장비와 IT쪽으로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이 밖에 “차오부부가 남중국해가 바라보이는 홍콩의 한 언덕에 3100만 달러 상당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총 2400만 달러에 달하는 6건 이상의 홍콩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부패 드라이브에 나서면서 부담을 느낀 시 주석이 누나 부부의 재산처분을 계속 독려하고 있다는 얘기는 간간히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재산을 어떻게 처분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작은 누나 치안안

시 부주석의 작은 누나 치안안(齊安安)과 그의 남편 우룽(吳龍)은 차오차오 부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역시 권력형 축재의혹을 받고 있다. 그녀가 받고 있는 의혹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진 이동통신과 관련한 이권이다.

외교학원(外交學院)을 졸업해 영어 불어 등 외국어에 능한 치안안은 일찍부터 무역업계에서 일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는 국영 국제상보사(國際商報社)에서 오래 일했다. 그 뒤 남편과 함께 통신업에 뛰어들어 베이징친촨전파공사(北京秦川傳播公司)의 부총경리를 맡았다. 그녀 부부는 지금도 방송과 통신업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룸버그는 베이징의 한 컨설팅 업체를 인용해 “치안안의 남편 우룽이 운영하는 통신업체 신유퉁(新郵通)공사가 2012년 국유 이동통신사로부터 수억위안 어치의 계약을 따냈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치안안 부부가 최근 구설을 피해 재산을 정리하고 아예 호주로 이주했다는 소문을 전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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