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의 시진핑시대 해법 ②] 산천초목도 벌벌 떠는 中 ‘시왕동맹’
시진핑 ‘반부패’ 발맞춰 왕치산 ‘중앙순시조’ 전방위 사정
“아무도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부메랑’ 우려도
[아시아엔=안동일 칼럼니스트/동아시아 연구가] 사정의 칼날을 대호(大虎)들에게 차례로 겨누면서 진군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과 사정책임자 왕치산 서기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다. 요즈음 중국의 산천초목을 떨게 하면서 호랑이, 여우 심지어는 파리들을 숨죽이게 하는 기구가 바로 왕치산의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다. 중기위는 8천만 중국공산당 당원들의 기율문제를 책임지는 조직으로 넘버2로 부상했다는 왕치산이 이 조직의 수장이다. 시 주석 체제가 출범한 18차 당대회 이후 중기위가 낙마시킨 높고 낮은 부패관료는 무려 25만명. 큰 도둑 대호와 작은 도둑 파리, 해외 도피범 여우들이 전전긍긍하고 있고 일반 국민, 라오바이싱(老百姓)들은 박수를 치고 있다. 그 중심에 중앙순시조가 있다.
‘중앙순시공작영도소조’의 약칭인 ‘중앙순시조’는 중기위 소속 공직기강 암행감찰반에 해당하는 조직으로, 왕 서기가 직접 조장을 겸하고 있다. 최근에는 텔레비전 인기 앵커, 명문대 법대 교수 등 40여명으로 꾸려진 중앙순시조 특별초빙 감찰원들을 위촉해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사정에 나서고 있다. 주요 감찰대상은 각 성(省)의 당서기와 성장, 중앙부처 부장(장관급)과 부부장(차관급) 등이다. 중앙순시조를 앞세운 중기위는 역대 최강이란 평가다. 원래 왕치산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서열 6위였다. 하지만 요즘은 ‘시왕(習王)동맹’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권위가 격상됐다.
그가 중기위 서기로 임명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강단이 필요한 사정 업무에 금융과 통상 전문이었던 왕치산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 주석이 ‘호랑이 사냥’을 언급하자, “샌님은 호랑이 사냥은 엄두도 못낼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지식분자는 ‘류망(流氓·깡패)’들을 때려잡지 못할 것”이란 비아냥도 나왔다. 이같은 비아냥에 왕치산은 “지청(知靑)을 견딘 우리가 바로 류망”이라며 “누가 두렵나”고 일갈했다고 한다. 지청은 문화대혁명 때 산간벽지와 탄광 등지로 하방돼 고초를 겪은 지식청년을 말한다. 시진핑, 리커창, 왕치산 등 현 지도부가 바로 대표적인 ‘지청세대’. 시 주석과 왕 서기는 산서성에서 함께 지청을 겪었다.
저우융캉 사건을 중화권 언론들은 ‘2호 특별안건’이라 부른다. 이보다 더 민감한 ‘1호 특별안건’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대상자는 저우보다 지위가 높을 공산이 크다. 그만큼 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1호 안건의 주인공인 ‘큰 호랑이(大老虎)’는 누굴까.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 리펑(李鵬) 전 총리,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의 이름이 그럴싸한 이유와 배경으로 차례로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시왕의 사정 드라이브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두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시 주석은 최근에도 “뼈를 깎아 독을 치료하고(刮骨療毒), 장사가 팔을 끊는(壯士斷腕) 용기로 반부패 투쟁을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반부패, 사정 드라이브에 정치생명을 건 듯한 모양새다.
부패문제에 관한 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속사정
그런데 쾌도난마와 같이 질주하는 시왕동맹은 처음부터 딜레마를 안고 있다. 부패문제에 관한 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중국지도부의 속사정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중국 공산당과 그 지도부는 부패로 단결해 왔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부끄러운 정설’이다. 국민에 의한 감독과 모니터링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는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집에서 황금이며 현찰이 톤 분량으로 쏟아졌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여타 지도부라고 해서 사정이 그다지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집안에 보화를 놔 둔 쉬차이허우는 오히려 순진한 편으로 다른 지도급 인사들이 해외 페이퍼 컴퍼니로 빼돌린 돈의 액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듯 싶다.
최고위급 간부 ‘불처벌 원칙’이 무너진 지금 따져보면 시왕의 사정 칼날에서 자유로운 렌다오(領導)급 인사는 없다. 심지어 전임 최고지도자도 그렇다. 워낙 이런저런 추문이 많은 터에 측근으로 분류되던 저우융캉과 군부의 쉬차이허우마저 잃은 장쩌민은 물론, 상대적으로 소심하고 깨끗하다는 후진타오 또한 심복인 링지화(令計劃) 통전부장에 대한 조사설이 있어 심기가 편치 않다. 얼마 전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이 시 주석에게 반부패 운동의 발걸음이 너무 빠르다며 제동을 걸었다는 소식이 나온 배경이다.
그리고 최근 드러났듯 시 주석 본인 역시 친인척의 축재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 주석이 누나 부부의 재산을 처분하도록 독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부담 때문이다. 중국의 부정부패는 공작비라 불리는 월급이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것도 큰 요인이다.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한데 아직 공작비 현실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공산당 간부들은 열에 여덟 아홉은 자신의 자녀를 구미에 유학시키고 있다. 시 주석 딸도 미국 하바드대에 가 있다. 그들은 귀국하면 유수 국영기업이나 신흥재벌 기업에 입사한다.
11월27일 보도에 따르면 구미에 유학해 학위를 받고 귀국한 해외 석박사의 평균 월 소득이 5천위안(약 90만원)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의 공직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가 부장(장관)이다. 지방 큰 성의 당서기와 정치국 상무위원도 이에 준하는 지위로 꼽힌다. 이들의 공식 급료는 1만위안 수준이다. 우리 돈으로 1백80만원, 이 돈으로 장관의 품위를 유지하고 어떻게 자식들을 하바드대에 보내는가. 또 유학파 석박사는 그 월급으로 고층아파트에 살고 좋은 차를 몰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해 이른바 부수입으로 산다는 얘기다. 중국의 정관계, 학계, 문화계는 꽌시(關係)경제를 통해 움직여 왔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쁘게 말하면 ‘뇌물경제’, ‘지하경제’다.
그러면 이렇게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부패 투성이고 문제 많은 체제가 망하지 않고 버텨왔는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꽌시경제에 관대한 라오싱
한마디로 파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747달러로 2001년보다 6배 증가했다. 베이징, 상해의 생활수준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우리 수준이거나 더러는 그 이상이다. 서쪽 오지에서도 굶는 사람은 없어졌다고 한다. 중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이 민도의 차이다. 서구식 잣대로 중국과 중국 국민을 재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저들에게 마오쩌뚱은 이전의 살벌하고 탐욕스런 황제들과 달리 그래도 민중을 얘기했던 영명한 새 황제였고 덩샤오핑은 자신들을 굶지 않게 해준 역사 이래 최고 지도자다. 지도자 덩의 노선에 따라 새로 정비된 공산당의 취지와 논리는 좋지만, 탐관오리가 먹칠을 하고 있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그러면서 도시 라오바이싱들은 ‘꽌시경제’에 대해 무척이나 관대한 편이다. 공무원 경찰 교사는 워낙 월급이 적으니까 그들 덕에 장사해서 돈 버는 우리가 나눠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크기에 대한 불만은 가끔 있어도 그게 사회생활 아니냐는 식이다. 그럴 것이 웬만한 도시 노점상들도 월 2만-3만위안을 번다고 한다. 대학교수의 서너배 수준이다. 하지만 지방 벽촌에서는 아직도 몇 백위안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니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공작비 현실화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도 60~70년대에 그랬다. 그때 월급으로만 사는 공무원 교사가 있었다고 믿는 국민이 있을까. 동사무소에서 등초본 뗄 때 급행료 안낸 사람 어디 있고, 교통 범칙금 대신 담뱃값 한번 안 준 사람 어디 있던가. 그랬던 우리도 정권마다 내걸었던 부정부패 일소와 사정의 회오리를 겪으면서, 또 몇 차례의 급료 현실화를 통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지 않은가. 부패의 규모와 방법이 교묘해지고 커졌는지는 모르지만 일상에서의 부정부패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란 말이 유행했던 일본이나 대만도 거의 비슷한 수순을 겪었다.
말하자면 시왕의 사정 드라이브는 중국의 성장통이다. 파이가 커진 만큼 부패의 규모도 커졌고 이를 처단할 칼도 커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칼을 들고 보니 모두가 목을 쳐야 할 대상 아닌가. 게다가 그 큰 칼이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경우 그 피해 또한 상상을 초월하지 않겠는가. 시왕의 딜레마가 이것이다. 상대적으로 왕치산의 추문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식이 없다. 그를 발탁하고 끌어준 개혁총리 주룽지 전 총리와 더불어 그의 인기가 더 올라가는 배경이다.
라오바이싱들은 이번 반부패 개혁 드라이브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저들도 이번 드라이브 한번으로 부정부패가 일소돼 청정사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사정의 칼날에 부패 근절 말고도 다른 의도도 당연히 있다고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정통한 베이징 정가 소식통들이 “시 주석과 왕 서기의 반부패도 결국 선택과 집중, 속도 조절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금 중국 권부의 상징인 홍장과 지방의 홍장 베이다허에서는 연일 격론과 고함이 오갈 것이다. 그래서 ‘1호 안건’은 신지도부가 잡은 기선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엄포용 히든카드일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