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의 시진핑시대 해법 ①] ‘홍장’ 제대로 알아야 홍콩사태 보인다
노란우산 혁명 앞날 중국 지도부에 달려
[아시아엔=안동일] 올 가을 지구촌의 핫 이슈로 등장한 홍콩 민주화 시위를 보면서 중국과 중국 공산당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9월 말 촉발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두 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그 분위기가 초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당초 노란 우산 혁명 이라고 치켜세우면서, 금방이라도 무슨 사단이 날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던 한국을 위시한 서방언론들의 입장에서 보면 머쓱할 법 하다.
시위가 대규모로 촉발 됐을 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중국 지도부가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첫째, 완전한 자유 직선제라는 홍콩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둘째, 천안문 사태와 같이 강경 진압에 나선다. 셋째, 자유 직선제는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다른 유화책으로 타협을 시도한다. 넷째, 시위가 수그러들 때까지 기다린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극적으로 달라질지 예단하기 쉽지 않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첫번째 두번째 시나리오는 물 건너간 셈이 됐고 세번째 네번째 시나리오가 맞은 셈이다.
이번 홍콩 사태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촉발 됐고 전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결정에 따라 귀추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홍콩 선거 관련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결정. 명목은 그렇게 돼 있지만 당 지도부 홍장(紅帳)의 결정이다.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을 영어로는 포비든 시티(Forbidden City) 라고 쓴다. 의역이다. 금지된 도시. 그런데 바로 옆에 위치한 중난하이(中南海)야말로 중국의 금지 성역이다.
중난하이는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집단 거주지이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 청사가 입주해 있는 곳이다. 중해와 남해라는 2개의 인공호수를 끼고 건축한 옛 황제들의 별궁이었다. 일반인들은 내부에 들어 갈 수 없지만, 입구를 먼 발치서 들여다볼 수는 있다. 입구 안에는 ‘爲人民服務(인민을 위해 일하자)’라는 글씨가 씌여진 붉은 벽이 내부를 막아서고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 ‘홍장’이란 말은 권력의 심장부를 뜻한다.
마오쩌둥의 주니회의 이후 홍장 전통
중국 공산당의 모든 중요 결정이 홍장안의 치열한 토론과 절충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은 마오쩌둥이 당권과 군권을 토론으로 장악한 주니(遵義)회의 이후 정립된 중공의 전통이다.
2017년 행정장관 보통선거 실시와 입법원 구성에 관한 구체적인 틀이 제시됐는데, 그 내용은 이미 약속한 보통 직접 선거가 아니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서구식 민주주의에 익숙한 홍콩 시민들이 반발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얼마간의 반발이 있으리라고 예상 했을 것이다.
지금쯤 홍장은 어떤 인사가 반체제 성향을 지녔고 어떤 집단이 이른바 불순세력인지 파악한 보고서를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지는 않나 싶다.
우리를 포함해 많은 서방 사람들이 천안문 사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중국 공산당이 사태를 부끄러운 과거, 자신들의 오점 이라고 여기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그것이다. 그렇지 않다. 저들은 불순 폭도들의 난동을 영웅적 인민 해방군이 진압한 사건으로 오히려 이로 인해 공산당의 단결과 입지 그리고 진로가 공고해 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당원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그런 사람들이다. 저들은 아시아, 아니 지구촌 최대의 파워 집단이다.
창당 때 당원 53명으로 출발한 공산당은 90 여년이 흘러 세계 최대 정당으로 성장했다. 지난 2012년 말 당원수가 8천만을 넘었단다. 인구의 6퍼센트가 당원이라는 얘기다. 그 6퍼센트가 중국을 철두철미하게 지배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당원 숫자도 기천만에 이르기는 하지만 조직력과 행사하는 권력은 중공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저들은 숫자 뿐 아니라 실제 소유하고 있고 운용하고 있는 부(富)에 있어서도 상상을 초월한다. 언젠가는 길림성 쯔안시의 한 공원에서 한국 기업체와 연계해 문화행사를 가지려 허가를 받기위해 시청, 시 인민위원회를 찾았는데 당위원회 사무실로 가라는 것이었다. 문제의 연화공원 소유권이 공산당에 있다는 것이었다. 놀랄 따름이었다.
물이 고이면 썩는 법. 견제 받지 않은 권력, 공산당의 부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기에 최근 들어 유난히 법치가 강조되고 있다.
중국도 형식적으로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이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3권이 독립된 것은 아니다. 실제 3권을 통제, 감시, 조정하는 모든 권력을 공산당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當)이 사법기관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통해 사법기관의 독립을 근본적으로 막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어떻게 법치를 세운단 말인가. 저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법치는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법의 지배가 아닌 당의 지배를 바탕으로 하는 당치(當治)인 셈이다. 그래서 중국을 당국(當國)이라지 않는가.
부패척결과 관련된 믿거나 말거나식 얘기지만 중국 공산당원 사이에는 당은 오지에서 재교육을 시킬지언정 동지들을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퍼져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처형장면은 대 인민선전을 위한 영화촬영이라나. 우리는 그런 중국공산당과 마주하고 있다.
지리와 역사를 근린 사섭(事攝)하고 있지만 결코 우방이라고는 할 수 없는 G2 국가, 최대 교역 상대국, 지구촌에서 가장 큰 독재 정당이 통치하고 있는 나라, 그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 갈 것인가.
저들이 이번 홍콩 사태를 어떻게 처리 하려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 볼 일이다. 홍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가늠하는 일이기도 하다. 달라진 위상과 세월의 무게에 걸맞은 화이부동(和而不同·같지는 않지만 화목하게 지낸다, 시 진핑 주석의 좌우명)의 모습을 기대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