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의 시진핑시대 해법 ④] 시진핑의 두 얼굴, ‘모택동 손자’ 그리고 ‘등소평 판박이’
친근함과 청렴결백 어필하나 전임자들보다 보수성향 강해
[아시아엔=안동일 칼럼니스트/동아시아 연구가] 사람들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친근한 이미지와 그간의 숨죽인 행보 때문인지 몰라도 그가 철두철미한 공산당원이라는 사실을 가끔씩 잊는 모양이다. 시진핑 주석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최근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이 전 세계 30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세계 10대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일종의 ‘인기도 조사’를 했는데 시 주석이 오바마와 푸틴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그의 국내 및 대외정책에 대한 자국민 신뢰도는 94.8%, 93.8%로 각각 나타났다. 특히 시 주석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국가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한국도 포함해서 말이다. 한국언론에는 시 주석의 근황이 거의 매일 기사와 칼럼 등으로 소개되고 있다. 1월20일자의 경우 “시진핑 주석의 연봉이 오바마 대통령의 20분의 1, 박근혜 대통령의 8분의 1에 불과하지만 일은 훨씬 많이 한다”는 기사가 도하 일간지를 일제히 장식했다. 19일에는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돌았다는 기사를 전하면서 시 주석의 사진을 곁들여 그가 이를 어떻게 극복할지 관심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기실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에다 부정부패를 뿌리뽑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행보는 부러움과 함께 찬사와 인기를 불러 오기에 충분하다.
후덕재물(厚德載物·덕을 쌓아 만물을 포용한다는 뜻)은 시 주석의 정치철학으로 알려져 왔다. 그의 시대가 열리자 많은 분석가들은 인화단결을 그의 리더십 특징으로 꼽았다. 지도자로 낙점되는 과정에서 그의 특장점은 어느 파벌도 거부할 수 없는 인물이란데 있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반부패 기치를 내걸었을 때 융화를 중시하는 그가 얼마나 큰 호랑이를 잡을지 미지수라는 냉소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현재 시 주석의 기세는 그런 기존 평가를 무색케 하고 있다. 돌아보면 철저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주변의 견제를 이겨내고 자신의 때가 오기만을 기다려 왔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의 본질적인 정치철학이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들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면서 철저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지난해 한 포럼에 참석해 “마오쩌둥을 무시하는 것은 공산당의 붕괴를 초래하고 중국을 큰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문화혁명 시기의 과오는 4인방의 잘못”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부패를 겨냥한 사정 칼날과 함께 군부통제를 부쩍 강화하고 있는 그는 최근 연이어 군대를 시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난징군구를 찾은 자리에서 시 주석은 “군 장성과 관료들은 적어도 1년에 15일을 사병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군부는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이겠다”며 군기관지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고 총은 당이 관장한다”고 마오쩌둥이 1958년 군 간부들에게 내린 지시와 같다.
서방의 유력언론인 <LA타임즈>는 지난해 8월 법치를 유난히 강조하는 그의 이율배반적 비밀지시를 폭로했다. 공산당 중앙판공실이 시 주석의 지시라면서 각 대학에 내려보낸 7가지 금지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조치에는 대학 교실에서 보편적 세계가치, 언론의 자유, 시민사회, 인권, 공산당의 역사적 오류, 권력 및 부유층, 사법 독립 등에 대해 토론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시중쉰의 아들이 아니라 마오의 손자’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은 각 대학에 조반유리(造反有理·모든 반항과 반란에는 나름대로 정당한 도리와 이유가 있다는 뜻)를 통해 홍위병과 학생들을 부추기며 권력투쟁 과정에서 정적들을 숙청했다. 중화권 진보매체들은 요즘 베이징 정가에서 “시 주석이 시 중쉰의 아들이 아니라 마오의 손자인 것 같다”는 얘기가 회자된다고 전하기도 한다. 이는 시 주석과 중국인들에게는 오히려 자랑으로 여겨지는 칭송이다. 그만큼 ‘마오쩌뚱 열풍’이 새삼 불고 있는 것이다. 마오 탄생 120년이 되던 2013년 12월26일을 ‘마오마스’라 부르며 서양의 크리스마스 이상의 전국적인 축제로 이끌었던 이가 시 주석이다.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는 휴일이 아니다.)
시 주석이 마오만큼 존경하고 칭송하는 이가 바로 덩샤오핑이다. 지난해는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이었다. 시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기념좌담회를 비롯해 각종행사를 주도했다. 그는 중요담화 훈시를 통해 “덩 동지의 사회주의 현대화 청사진에 따라 위대한 조국이 하루가 다르게 번영하고 부강해지며 중화민족이 위대한 부흥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면서 “20세기에 위대한 역사적 승리를 거둔 중국 공산당과 인민들은 21세기에도 반드시 위대한 역사적 승리를 거둘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부족하고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은 힘써 개혁하고, 외국의 유익하고 좋은 것은 겸손하게 배우지만 그것을 그대로 답습해서는 안 되고 외국의 해로운 것은 더욱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우리의 것을 함부로 업신여기고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덩샤오핑이 당이 흔들릴 때 결연히 무력을 사용했던 것도 혁명을 고수하려는 애국의 결단이었다고 칭송했다. 집권 후 시 주석의 행보와 주요 발언들을 토대로 종합해 보면 그의 철학과 노선을 다음과 같이 종합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상대적으로 보수파에 속하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다. 그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애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다. 서구식 다당제와 자유, 보통, 비밀, 평등 선거 등 이른바 정치개혁은 그에게 있어 구두선에 불과하다.
둘째,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개방노선을 견지한다. 이는 덩샤오핑의 노선이며 경제철학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적’이라는 단서가 말해주듯 경제활동의 자유는 당과 국가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넘을 수 없다.
셋째, 중화주의로 불리는 ‘중국민족주의’를 거침없이 얘기하는 역사관을 지니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다르지만 화합한다”는 ‘화이부동’을 내세우면서 실용을 추구하는 현실론자다. 하지만 민족간, 국가간 이익이 대립할 때는 언제든지 화이부동이라는 수사를 폐기하고 단호하게 실리를 추구할 공산이 크다.
시 주석에게는 또 하나 커다란 장점이 있다. 바로 청렴하다는 점이다. 여기에도 상대적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아무리 중국이라고 해도 연봉 2천만원으로는 주석다운 품위유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시 주석은 청렴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정치의 길에 들어서기 전 두 가지 다짐을 했다고 한다.
천시·지리·인화 타고난 지도자
“첫째는 청렴하게 큰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치를 하는 한 재산 모으기를 포기했다. 비록 일생 동안 별다른 큰 업적을 못 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청렴한 관리로 명성은 남기겠다고 다짐했다. 두번째는 승진을 최상의 목표로 두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능력이나 네트워크가 뛰어나다고 해서 승진하는 것은 아니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 등 조건이 어우러져야 승진이 되는 만큼,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승진에 욕심을 두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거부하지 않는 중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행보만으로도 그는 천시를 탄 걸출한 지도자다. 하지만 정치 경제 지리적으로 많은 점에서 근린 사섭(事攝)하면서 관련을 맺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를 일방적으로 칭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눈 크게 뜨고 그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면서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웃으로서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우리 입장을 다져야 한다. 우리의 실리를 위해서다.
공산당(빨갱이)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른바 자유진영에서 그의 인기가 높은 현상이 흥미롭지 않은가요.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