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의 시진핑시대 해법 ⑩] AIIB를 넘어 신개발은행(NDB)으로···’일대일로’ 박차

[아시아엔=안동일 동아시아 연구가]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夢), ‘팍스시니카’(중국중심 세계질서)를 향한 행보가 지금으로서는 거칠 것 없어 보인다.

시 주석은 22일 자신으로서는 감회가 깊을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인도네시아 반둥은 60년 전, 마오쩌뚱을 대리한 저우언라이가 미소 양강의 국제질서의 개편을 촉구하면서 비동맹회의를 창설했던 바로 그곳이다. 당시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은 중국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그때 아버지 세대가 제3세계를 얘기했다면 이날 시 주석은 당당히 제1세계를 얘기했다.

반둥회의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번 16차 아시아·아프리카(AA)회의에서 보란 듯이 기조연설을 맡은 시 주석은 “더 바르고, 평등한 국제질서를 만들어 ‘인류운명공동체’를 건설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취임 직후부터 ‘미중 신형대국관계’를 주창하며 다자외교 무대에 설 때마다 ‘아시아 신안보관’, ‘국제금융기구 개선’, ‘다극화 및 국제관계 민주화’ 등을 촉구해온 그가 내민 팍스아메리카나 즉 미국에 대한 도전장의 결정판이다.

이같은 시진핑의 행보를 중국에 대해 정통한 호주의 러드 전 총리는 “은밀히 힘을 키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벗어나 전투적으로 뭔가를 이뤄내는 ‘분발유위(奮發有爲)’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분발유위’는 보다 더 적극적이고 국제문제에 개입해 국가이익을 극대화 한다는 개념이다. 러드 총리는 루커원(陸克文)이라는 중국 이름도 갖고 있는 중국통.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도 거론된다.

시 주석은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정상들에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대대적인 흥행과 함께 탄력이 붙은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 줄 것도 요청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야말로 ‘시진핑 중국몽’의 창과 방패라고 할 수 있다. 시 주석은 이미 돈 보따리를 들고 주변국을 방문하며 일대일로에 대한 광폭 행보를 시작했다. 엊그제 파키스탄서 그는 350억 달러의 보따리를 풀었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중서부 개발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진출하는 육상 벨트인 ‘신실크로드’와 남부지방과 바닷길을 개발해 동남아시아 등지로 진출하는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한다는 구상이다.

일대는 ‘원 벨트’ 일로는 ‘원 로드’ 개념으로 철로연결뿐 아니라 지역별 경제영향권을 묶는다는 의미다. 원 벨트는 말 그대로 벨트개념의 복합개발이다.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길마다 고속철도가 들어가는 건 물론이고 그 밑으로 가스관, 송유관 등의 인프라 투자도 병행된다. 이를 통해 아시아 지역은 물론 중동지역과 유럽국가들까지 모두 포괄하는 ‘메가경제권’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언론들은 세계 60여개국을 아우르는 총인구 44억명, 경제규모 21조 달러에 달하는 경제권이 탄생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보였다.

일대일로 추진은 외부적으로는 세계 판도를 새로 구성해 더 이상 미국의 패권주의를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여겨진다. 내부적으로는 신성장엔진을 확보하고, 공급과잉산업의 거품을 완화해 경기를 부양하는 실리를 얻겠다는 의도도 읽혀진다. 그리고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 진작된 금융을 통해 주변국가에 자본을 수출하고 인프라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 일대일로는 중국이 G2(미국 중국)가 아닌 G1으로 올라서기 위한 ‘팍스 시니카’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야심찬 이 구상은 실행에 옮겨져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 답은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높고 깊지만 일단 출발단계에서 파란불은 켜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시 주석의 중국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맥을 파악하고 있어 그 첫 단추로 세계 금융시장의 미국 패권을 공략한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44년 뉴햄프셔 브레턴우즈에서 기축 통화국으로 인정받았는데, 이때 만든 기구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세계은행과 IMF는 이후 미국의 양대 신기(神器)로 불리며 미국 금융패권의 상징이 됐다.

시진핑은 그런 미국의 상징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후 70년 누구도, 어느 나라도 하지 못한 일이다. AIIB가 그 구체적인 상징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 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AIIB는 57개국 참여 속에 연내 출범을 앞두고 있다. AIIB는 중국의 안방에서 출범했다. 그만큼 시진핑이 들인 공도 많다.

알다시피 기존의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미국의 양해 하에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66년 설립 이래 9명의 총재를 모두 일본이 가져갔다. 일본 입맛대로 지원국과 대상·조건을 정하기 일쑤다. 일본 기업의 아시아 진출 도구로 쓰인다는 비판도 많았다.

시진핑은 3년 전 ADB에 기여금을 더 낼 테니 우즈베키스탄의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자고 했지만 미국과·일본은 동의하지 않았다. 인권문제를 이유로 삼았지만 속내는 중국 견제였다.

시진핑이 아예 새 국제금융기구, AIIB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2013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설립을 제안했고 지난해 10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21개국이 모여 양해각서(MOU) 체결식을 갖고 공식 설립을 선언했다. 4조 달러에 육박하는 외환보유액을 기반으로 한 시황제 ‘금융굴기’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서막에 이어 AIIB 회원국 모집으로 진행된 1막은 예상 밖의 흥행으로 기록됐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주요 국가들이 시 주석의 뒤에 섰던 것이다.

이번 회원국 모집에서 선명히 드러난 건 세계 57개 나라가 일단은 미국의 ‘핵폭탄’이 아닌 중국의 ‘돈폭탄’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최대 우방국인 영국이 제일 먼저 손들고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AIIB를 통해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1조5천억 달러(10년간)에 달하는 돈을 조달해야 하는데 영국은 바로 이 시장에서 자신들이 경제적 혜택을 볼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가입을 서둔 것이다. 제조업이 붕괴되고 남은 것은 금융산업뿐인 영국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가진 4조 달러 외환보유고의 힘이다.

그뿐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AIIB만 생각하고 있는데 시황제 금융굴기의 수는 또 하나 있다. 지난해 7월 브라질서 열린 브릭스(BRICS) 4개국 정상회담에서 중국 주도의 신개발은행(NDB) 설립이 합의됐다. 브릭스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5개국을 말한다. NDB의 목표 역시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 지원으로 돼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NDB야말로 미국의 금융패권에 던지는 시진핑의 강력한 도전장이다.

AIIB가 미국과 일본이 쥐락펴락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대항마라면 NDB는 세계은행의 대항마다. 구체적인 설립 행보에 들어가면 최근 보여준 AIIB 흥행 이상의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켜 미국의 속을 한바탕 더 끓게 만들 것이 자명하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어차피 AIIB에 가입했고 일대일로와 관련된 이상 중국과 미국 사이에 놓인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합리적 이익’을 우선에 놓아야 한다. 그런 관점과 입장에서 우리는 시 주석의 중국몽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직 공연의 성공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긴 공연의 서막이 끝나 1막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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