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그대를 그냥 보내드리기가 너무도 슬프고 애가 타며 가슴이 아프오. 형은 이 흉한 속세에 더 이상 어울릴 수가 없었소. 그 맑고 고결한 영혼과 사상은 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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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그대를 그냥 보내드리기가 너무도 슬프고 애가 타며 가슴이 아프오. 형은 이 흉한 속세에 더 이상 어울릴 수가 없었소. 그 맑고 고결한 영혼과 사상은 온통
추석 연휴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무더위와 태풍이 지나간 가을 풍광이 어떤 느낌이신지요? <아시아엔>은 페이스북에 나타난 글과 사진을 통해 2022년 추석을 리뷰하면서 올 가을 평화와 풍요를 함께
박시교(朴始敎, 1947~ )란 시인이 있다. 경북 봉화 출생의 그는 197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는 시조작품을 쓰는 시인이다. 그때 당선 시는 ‘온돌방’이란 제목이다. 실제로 온돌방의 따뜻함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12일 오후 3시 부산 금정구 홍법사 법당에서 열린 ‘아시아의 평화와 새로운 인권연대를 위한 일본군 위안부 상생 한마당’에 출연했다. 위안부 여성들이 당시
<친일문학론>을 쓰신 임종국 선생의 친필편지를 소개한다. 선생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자료를 절대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만약 빌려주게 되면 그것을 ‘변절(變節)’이라고 했다. 이 변절이란 표현이 싫어서 또
오랜 친구 정각(正覺) 김성동에게 이 한 해에 가까웁던 벗들이 하나 둘 병으로 쓰러져 몇은 백골이 되고 또 몇은 병상에 누워 마지막 숨을 할딱인다. 괴질 때문에
옛 편지를 정리하다보디 백석(白石) 시인의 애인이었던 할머니 자야(子夜) 여사의 편지가 많이 쏟아져 나온다. 정식 문장수업을 받지도 않았을 텐데 문장의 흐름이 반반하고 단정하다. 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운기(高雲基, 1961~ ) 시인은 전남 보성 출생이다. 한양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 고전문학, 그 중에서도 <삼국유사>에 대한 연구가 깊어 여러 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길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은 대학시절의 은사였다. 1960년대 후반, 경북대학교 문리대 국문학과에 입학해서 현대문학사, 시론 등의 강의를 들었다. 성품이 차갑고, 온유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강의는 시종일관 멋스럽고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학론> 한 권만으로도 우리 시대의 서슬푸른 선지자이셨다. 민족사의 암울한 안개를 걷어내고 자랑찬 역사를 일으켜 세우려 뼈를 깎는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셨다. 이런 분께 가까이
참으로 우스운(?) 경험을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밤 9시6분 대구교통방송(TBN) 생방송 프로가 있습니다. 제목은 “달구벌가요사”. 대구의 대중음악사를 더듬으며 노래 두 곡을 보내드리는 토막 코너인데요. 늘 15분 정도의
서가에서 예전에 보던 책을 문득 꺼내어 펼치는데 책갈피 사이에서 편지 하나가 툭 떨어진다. 집어들고 보니 낯익은 필체다. 김규동 시인께서 직접 보내주신 친필편지. 읽을수록 장엄하고 바하의
안동시 일직면 조탑안길 57-12, 권정생(權正生, 1937~2007) 선생이 사시던 집, 이 작고 초라한 오두막집에서 대작 “강아지똥”, “몽실언니”를 쓰셨다. 작은 밥상에서 원고를 쓰다보면 책더미 틈에서 생쥐가 나와
그간 시집이나 저서를 숱하게 발간하곤 했지만 제자들이 자기 선생의 신간을 직접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드물다고 해야겠다. 어쩌다 어디선가 내 시집을 구해와서 서명을 요청하는 경우는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으려 애써 분투하다 순국하신 저의 조부님 이명균(李明均, 1863~1923) 의사가 세상에 남긴 친필 간찰입니다. 글씨에서 당신의 치밀하고 올곧은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