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박시교 시인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박시교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박시교(朴始敎, 1947~ )란 시인이 있다. 경북 봉화 출생의 그는 197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는 시조작품을 쓰는 시인이다. 그때 당선 시는 ‘온돌방’이란 제목이다.

실제로 온돌방의 따뜻함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다수의 시작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의 여러 작품 중 늘 가슴에서 잊히지 않는 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란 작품이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간직한 아름다운 이름이 있다. 누구일까. 몰래 감춘 애인일까.
아니면 평생 잊지 못할 다정한 친구일까. 여러 궁금증을 물씬 자아낸다. 그 작품은 짧고 간결하며 주인공도 곧 납득이 된다.

그리운 이름 하나 가슴에 묻고 산다
지워도 돋는 풀꽃 아련한 향기 같은
그 이름 눈물을 훔치면서 되뇌인다
어머니

아하, 어머니였구나. 이토록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나는 제대로 원없이 불러보지도 못했다. 첫돌 전 열 달 무렵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병이 나서 줄곧 누워계셨다.

나는 어머니의 상여가 나가는 것도 몰랐다. 가족들은 모두 장지로 떠나고 난 아마 동네 아줌마의 등에 업혀 있었을 것이다. 그 아줌마들이 내 애달픈 운명에 눈물지었으리라.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보지도 못했고 어머니의 젖을 빨아보지도 못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모르고 어떻게 생기셨는지 얼굴조차 모른다. 사진도 한 장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 속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쓸쓸히 자랐다.

어머니가 없는 세상의 삶은 지리멸렬했다. 그 누구도 따뜻하고 은근한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영원한 그리움이다. 그게 가슴 속에서 시로 맺히고 별이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나면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육신에서 분리된 어머니의 혼령이 늘 아들 곁에 머물며 언제나 측은한 얼굴로 이것 저것 보살펴주신다는 것을.

얼마나 애가 타고 조바심이 났으면 그러셨을까. 그게 벌써 몇 십 년 째인가. 아기때 내 곁에 와서 머무신 것처럼 이 날 이 때까지 줄곧 아들 곁에 계신다.

오늘 소개하는 편지의 주인공 박시교 시인은 이 글을 보낸 지 반 세기가 넘었지만
아직도 상면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따금 대하는 그의 작품을 보면 그는 분명 다정하고 가슴이 따뜻한 시인이리라.

박시교 시인

이동순 詩兄,

안녕하십니까?
보내주신 자료며 글월 반갑게 받았습니다.
격려해주시는 힘 입어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만
워낙 부족한 사람이라
뜻과 표현이 함께 되어질까 걱정일 뿐입니다.
대구는 저의 마음의 고향처럼 자리하는 곳이라
이형이 계심이 더욱 반가워집니다.
바쁜 일과 중에 몇 자 적어올리는 글이라
처음의 실례가 있을 줄 압니다.
부디 안녕된 날 속에 건필하십시오.
조용한 시간이 오면 긴 글 드리겠습니다.

1973년 여름

박시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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