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친일연구가’ 임종국이 자료대출 엄격한 까닭
<친일문학론>을 쓰신 임종국 선생의 친필편지를 소개한다. 선생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자료를 절대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만약 빌려주게 되면 그것을 ‘변절(變節)’이라고 했다.
이 변절이란 표현이 싫어서 또 항의 편지를 하나 더 보냈다. 선생의 모든 자료는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 있다. 만년에 몸도 편찮으신 분께 번거롭게 고통과 불편을 드린 듯해서 무척 송구스럽다.
李東洵 氏 귀하
안녕하십니까?
좀 격앙된 편지를 쓰신 것 같더군요. 변절이란 말은 내가 내 작심을 바꾸는 것이 내게는 주관적으로 내가 변절하는 것처럼 생각이 든다는 의미이니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료관계는 거듭 미안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송기원씨에게도 자료관계라면 나를 심방(尋訪)할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했거니와, 그것들은 20여년간 내 생활의 일체를 희생해가면서, 나 혼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집대성한 것들이라, 이미 내 육신의 일부분처럼 되어버린 것들입니다.
나는 그 일을 내 삶에 대한 의무로서 했을 뿐, 빛을 낸다거나 평가를 받는다거나 하는 문제와는 초월을 했기 때문에 해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지라, 내 육신의 일부분을 단지 후학이라는 이유만으로 끊어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 자료들은 내 존명(存命) 중 나와 함께 숨을 쉬다가 사후에는 공공기관에 기탁되든지 나와 함께 운명하든지 그렇게 될 것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개인의 용도에는 제공되지 않을 겁니다.
이 점은 이미 내 처(妻)에게도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해두었습니다. 또 그것은 내 생활이 폐쇄적이 아니라 개방적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자료를 너무 무겁고 귀중하게 생각하는 폐단이 있는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 같은 입장이라면 그것들이 내 육신의 일부분으로 생각된다 해서 무리는 아니겠지요. 20년 신고(辛苦)의 결정(結晶)이니까요. 친소(親疎)와 교분의 심후(深厚)를 떠나서 누구에게도 내 육신의 일부분을 끊어줄 수는 없습니다.
또 설사 내가 자료들을 너무 무겁게 생각한다 해도, 명색이 학문 비슷한 것에라도 종사하고 있는 몸으로서 부끄럽게는 생각 안합니다. 학문에서 자료 이상으로 귀하고 소중한 게 어디 있습니까?
이러한 지라 누구에게도 그것을 끊어낼 수는 없으며, 요구에 순응할 수 없음을 미안하게만 생각할 뿐입니다. 제 입장과 심경을 밝혔습니다.
너무 나무랍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20년 신고의 결정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간의 일 없었던 것으로 돌려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87년 12월 3일
林鍾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