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66년 전 사진 속 동행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 <사진 이동순 시인 제공>

저는 이 사진을 좋아합니다.
볼 때마다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깃을 목까지 세워 올려 입은
검정색 오버코트에 갈색 중절모,
동그란 로이드 안경,
이것만 봐도 은근한 멋쟁이셨던 듯합니다.

크게 멋을 부리는 편은 아니지만
저절로 우러나는 멋쟁이,
당신은 악극이나 영화보기를 좋아하셨습니다.
1957년 겨울, 몹시 춥던 날,
대구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악극
“목포의 눈물”을 보러가던 길입니다.
당시 길거리엔 무조건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고
셔터를 눌러 스냅사진을 찍어놓고선
다짜고짜 주소를 묻는
거리의 사진사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진도 그렇게 해서 남게 된 명작입니다.

대구 교동시장 골목 부근입니다.
아버지는 막내아들 손목을 잡고 걷는데
아들은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네요.
수창학교 입학한 1학년 끝 무렵입니다.
그해 겨울엔 악극 “눈 나리는 밤”도 봤지요.
그걸 보러 가는데 함박눈이 내렸어요.
눈물의 여왕 전옥이 한탄조로 흐느낄 때
눈가루 뿌리는 소품 담당이 위에서
눈 바구니를 쏟아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전옥은 멋진 즉흥 대사로
이 난처한 장면을 노련하게 커버했답니다.

“하늘도 무심하셔라. 제 앞길을 힘들게 하시려고
눈을 이렇게 바구니째 쏟아부으시는 것입니까?”

관객들 박수가 소낙비처럼 쏟아졌습니다.
아버지는 1908년 출생으로
89세까지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제가 가끔 조용한 방에서 혼자 헛기침할 때
그 소리가 꼭 아버지 기침소리와 너무도 같아서
소스라쳐 놀랄 때가 있지요.
아버지께서는 바로 이 아들 몸속에
그대로 남아 머물러 계시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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