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1959년 봄 큰누나 결혼식 풍경

1959년 봄입니다.
화단의 꽃들이 피어나는데
큰 누나가 혼례식 올리는 날입니다.
이 행사를 위해
아마도 보름 전부터 준비했을 것입니다.
각종 도구와 재료 구입
이 분야 전문기술자의 초청
청첩장 제작과 발송
잔치에 쓸 돼지 맞추러 가기 따위로
집안은 보름 전부터 몹시 수선스러웠지요.

저는 아직 뵙지 못한
자형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사모관대한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태평로 큰 대문집 마당에서
전통혼례로 식이 열리게 되었는데
이날 행사를 위해
일가친척들이 잔치 전날부터
고향 마을에서 내려와 집에 득시글거렸습니다.
그 여러 사람 중
정매란 이름의 아주머니가 생각납니다.

가냘픈 몸매로
이것 저것 지시를 하는데
이미 경험 많은 장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매 아줌마가 주로 하는 일은
혼례 교배상에 올리는
한 쌍의 봉황을 찹쌀떡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색색으로 물들인 찰떡이
정매 아줌마 손을 거치면 기기묘묘한
봉황으로 빚어졌습니다.
또 마른 통문어를 가위로 오려
봉황을 만듭니다.
사람들은 둘러서서 탄복합니다.

드디어 혼례의 날은 밝아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 병풍을 치고
초례청을 준비합니다.
정매 아줌마가 만든 작품은
상 위로 모두 올라가 자리를 잡습니다.
살아있는 닭 두 마리도
비단보자기에 싸여 오릅니다.

마당 우물 가에선
팔뚝이 억센 장정 둘이
커다란 돼지를 잡을 준비를 합니다.
발목이 묶인 돼지는 체념한 듯
바닥에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돼지의 목을 밟고 서서
뾰족한 목괭이 날을
돼지 양미간에 콱 박는 순간
엄청난 소리를 지른 돼지는 곧 잠잠해집니다.
뜨거운 물을 돼지 몸에 부어
털을 벗기며 각을 뜨기 시작합니다.
돼지의 살점은 아직도 살아
꿈틀꿈틀합니다.
김이 오르는 돼지 간은
잡은 사람들이 그대로 썰어 소금에 찍어 먹습니다.
그 손놀림이 몹시 능숙합니다.

드디어 혼례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얼굴에 연지곤지 찍고
화려하게 장식한 누나는 두 여인 부축을 받으며
조신한 자세로 초례청에 섭니다.
새 신랑으로서는 이마에 주름이 보이는
자형이 사모관대하고 나타납니다.
웅성거리던 소리가 조용해지며
이윽고 식은 진행이 됩니다.

대문 앞은 벌써부터
온동네 거지들이 몰려와서
술과 고기 내놓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들의 소란을 막으려고
진작 술상을 차려 대문 앞에 펼쳤습니다.
나중엔 그들끼리 싸움판이 벌어집니다.
거지들 대접을 전담하는 사촌형이
대문 앞에서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재치있게 분위기를 정리합니다.

혼례식이 진행되고
간간이 사람들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그날 저녁 대청마루에서 펼쳐진 피로연입니다.
사촌자형 중 박노봉이란 분이 있었는데
보통 박 서방이라 불렀지요.
이분의 재담과 익살이 대단했습니다.
노래, 만담, 익살, 능청 따위로
좌중은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구릅니다.
피날레는 박서방의 곱사춤입니다.
베개를 등에 넣고 나타나
곱사춤을 추는데 자리는 완전히 뒤집어졌지요.

이런 박 서방은 참 귀한 존재입니다.
전쟁과 가난에 시달린 민초들이
박 서방 같은 재주꾼 익살 덕분에
잠시나마 시름을 잊었지요.
음식을 조달 공급하는 곳을 과방이라 했는데
이곳을 은근히 여인네들이 드나들었습니다.
배고픈 아이들 손목을 잡고 와서
실컷 배불리 먹인 다음
과방에 가서 음식을 얻어가는 것입니다.
기억나는 것들이 너무 많지만
이 정도로 줄입니다.

이렇게 누나의 혼례식 날은
자정이 넘도록 놀며 즐기다가
여기저기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었군요.
평소 조용하던 집안이
온통 인파로 왁자지껄하던
그날이 몹시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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