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65년 전 수창초등 2년 서정목 생일잔치

1958년 어느날 수창초교 2학년 서정목(오른쪽) 생일날. 왼쪽 옆이 박수근, 필자 이동순, 최종달(맨 왼쪽). 그리고 서있는 어린이는 서정목 여동생. 지금 70대 중반의 이들은 이 사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사진이 어디 갔지 하면서
여러 날 뒤졌는데 드디어 찾았어요.
대구 수창초등 2학년 때 모습입니다.
다른 사진들에 비해 가장 귀티 나는
꽤 있는 티도 일부러 뽐내는 입성이네요.
한 주 전에 초대 받고 맞춰 입은 옷이랍니다.
같은 반 아이들 넷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친구 서정목(우)의 생일입니다.
그 왼쪽 옆으로는 박수근,
얘는 방금 사과를 한 입 깨물고 있네요.
충치로 앞니가 빠져
옆의 치아로 사과를 깨무는데
워낙 힘을 주느라 눈동자의 초점마저
중심을 잃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 멋진 더블 프레스트를 입고
와이셔츠에 나비넥타이까지 갖춘
얼굴이 해맑은 소년이 바로 저랍니다.
오른 손엔 먹던 사과를 들고
입엔 사과를 한입 베어 머금은 채
카메라의 앵글을 보고 있네요.
왼쪽 끝 까까머리 소년은 최종달입니다.
별명이 종달새였지만 과묵했고
그 친구에 대해선 별로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뒤에 선 소녀는 정목의 누이동생입니다.
볼이 통통하고 영양상태가 좋아보입니다.
귀여운 색동저고리를 입고
커다란 꽃무늬가 박힌 비단치마 입었네요.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서정목입니다.
생일이라며 같은 반 동무 셋을 초대했습니다.
평소 먹기 힘든 소고기국으로
맛있고 푸짐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후식으로 사과 한 알씩을 받아
그걸 열심히 한 입씩 와삭와삭 먹는데
정목이 아버지가 돌연 사진을 찍었습니다.

뒤로 멋진 장롱이 보이지요.
그걸 당시에는 단스(たんす, 簞?)라고 했습니다.
단스 옆에는 고급 전축이 눈에 들어오네요
그런데 그게 꽤 부잣집 티를 내지 않습니까?
그 시절 맞춤형 장전축은 대개
영국제 마그나복스, 혹은 독일제 텔레풍켄입니다.
아니면 미국산 빅터였을 지도 모릅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축 유리에
초록색 등이 환하게 보였고 우퍼에서 들려오는
저음의 공명이 두드러진 느낌입니다.
스피커 성능이 아주 뛰어났다는 얘기입니다.

정목이와 수근이는 수창 배지를 옷깃에 달았네요.
친구 생일 초대라 아들을 남의 집에 보내는
부모가 입성에 각별한 신경을 쓴 흔적이 보입니다.
양말까지 모두 깔끔하게 갖춰 신었어요.
제가 입은 더블 양복은
양키시장(교동시장)에서 일부러 맞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제 손목을 잡고 단골집으로 가서
특별히 맞춰주신 옷입니다.
일본말로 ‘료마에’라고 부르던 기억이 납니다.
색상은 곤색인데 몇 번 못 입고
몸이 쑥쑥 자라서 결국 다른 집 아이에게
아쉽게 넘겨준 것으로 기억됩니다.

정목이네 집은 학교에서 가까운
인교동 부근입니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영화감독 이규환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를 제작했지요.
나운규, 문예봉 등이 출연했던 작품입니다.
수창학교 정문에서 큰 길을 건너
맞은 편 골목 두 번째 집인데
꽤 살림이 반들반들하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 모두 친절 자상하고
다정하게 우리를 맞아주셨지요.
집안의 형제들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귀여운 여동생을 둔 정목이가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쑥스러워 그날 정목이 누이에게
말 한 마디 붙여보지 못하고 말았네요.
이 사진을 찍은 뒤 65년 세월이
바람처럼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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