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이 그림이 내뿜는 뜻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1910년 8월 29일은 우리 겨레에게 너무 고통스런 시간이었지요. 나라의 주권을 강도 일본이 마구잡이로 탈취해간 비극의
Author: 이동순
정호승 시인의 편지…’한 사람이면 족한 친구’ 이동순에게
<문학의 집> 이번 호에 사랑하는 친구 정호승 시인의 편짓글이 실렸네요. 이 글은 지난번 내 편지에 대한 답글 형식입니다. <문학인이 띄우는 편지 215> 한 사람이면 족한
[이동순의 발견]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 스케치
생텍쥐페리(1900~1944)의 친필과 사진을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둔 놀라운 사람이 있다. 프랑스의 경매시장에서 구했을까. 그 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이것이 우리에게 특별한 구경꺼리는 분명하다. 세필로 그린
이동순 시인 대구MBC ‘나는 恨반도의 가수다’ 진행
시인 이동순 영남일보 명예교수가 5월부터 11월까지 대구문화방송에서 ‘나는 恨반도의 가수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두 30주 분량으로 가수를 선정해 대표노래 3곡을 이동순 시인의 해설과 함께 송출하고 방송 앞부분에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65년 전 수창초등 2년 서정목 생일잔치
그 사진이 어디 갔지 하면서 여러 날 뒤졌는데 드디어 찾았어요. 대구 수창초등 2학년 때 모습입니다. 다른 사진들에 비해 가장 귀티 나는 꽤 있는 티도 일부러
[오늘의 시] ‘나무의 거처(居處)’ 이동순
.무슨 나무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씨앗이 바람에 날려 혹은 빗물에 떠내려가다가 어느 배수구 홈에 걸쳐졌을 것이다. 그 상태로 싹이 트고 목 마른 뿌리를 갈라진 시멘트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1950년대 중반 대구 거리 ‘남매’ 풍경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가만히 음미하듯 들여다 봅니다. 칼라가 나오기 전 길거리 스냅으로 찍은 흑백사진이고 숱한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풍랑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있지요 원래 매끈하고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1959년 봄 큰누나 결혼식 풍경
1959년 봄입니다. 화단의 꽃들이 피어나는데 큰 누나가 혼례식 올리는 날입니다. 이 행사를 위해 아마도 보름 전부터 준비했을 것입니다. 각종 도구와 재료 구입 이 분야 전문기술자의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할미꽃’···인고(忍苦)를 일깨워주다
그 모진 겨울을 견디고 드디어 마당귀에서 가만히 고개를 다소곳 내미는 장엄한 모습! 묵묵한 인고(忍苦)를 일깨워주는 너의 모습이 아름답구나.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1958년 봄날 ‘마당 깊은 집’ 풍경
대구 종로초등 옆 서내동 긴 골목 끝집에서 두 해를 살았지요. 수창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각종 철공소 철물점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 서성로 큰 길을 건너 문성한의원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66년 전 사진 속 동행 ‘아버지와 아들’
저는 이 사진을 좋아합니다. 볼 때마다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깃을 목까지 세워 올려 입은 검정색 오버코트에 갈색 중절모, 동그란 로이드 안경, 이것만 봐도 은근한 멋쟁이셨던 듯합니다.
3년만의 ‘제야’의 종소리, ‘통일절’ 그날 향해
드디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모두들 힘든 시간 살아오느라 노고가 많으셨다. 지친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온 우리 발자국이 등 뒤로 길게 찍혀 있는 게 보인다. 깊은
이동순 시인 젖먹이 때 떠난 모친, 71년만에 남편과 해후하고…
아버님 가신 지 25년, 어머님은 떠나신 지 71년. 경북 김천 상좌원 고향 마을, 두 분은 너무 오래도록 멀리 떨어져 계셨다. 아버님은 성주골, 어머님은 나정지. 2022년
최백호 6.25동이 갑장 이동순, ‘이동순의 부산가요 이야기’ 연재 마감 소회
가수 최백호(崔白虎, 1950~ )는 저랑 6.25 사변동이 전쟁동이 갑장입니다. 그러고 보니 조용필도 동갑나기이네요. 그 난리 북새통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난 기적의 삶입니다. 하지만 고난은 그
72년 전 헤어진 부모 한자리에 모시는 시인의 눈물
어머님 돌아가신지 72년, 아버님 돌아가신지 23년, 드디어 두 분을 함께 한 곳에 모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새 장지는 군위가톨릭묘원입니다. 14일 이장허가를 받으려고 고향 김천시 구성면사무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