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부 이명균(1863~1923) 선생의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다. 조부님 호는 일괴(一槐), 마당에 심었던 우뚝한 회화나무를 가리킨다. 조부께서는 그야말로 한 그루 거대한 회화나무처럼 한국근대사의 파란만장한
Author: 이동순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유홍준, 전설을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할 때가 많았다”
유홍준(兪弘濬, 1949 ~ )은 한때 영남대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 교수였다. 창비 사장이면서 영남대 교수로 계셨던 미술평론가 김윤수 교수가 데려왔다. 유홍준은 민청학련 사건에 연좌되어 그 어디에도 대학에
[이동순 시인의 추억과 사유] ‘동아일보’ 소설 등단 이태호의 판화 ‘책벌레’
내 친구인 조각가 이태호(李泰豪)의 인상적인 판화작품입니다. 제목은 ‘책벌레’, 혹은 ‘간서치(看書痴)’입니다. 아래쪽에 연필로 쓴 친구의 서명이 있습니다. 그는 1973년 동아일보 소설 당선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본업인
김영일 본명 되찾은 김지하 고향 유달산에서 쓴 이동순 시인의 ‘조사’
지하 형님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저의 가슴 속에는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래서 예전 1986년 7월 5일 새벽, 저에게 직접 써보내신 편지를 꺼내봅니다. 형님께서는 ‘지하’란 이름의 무게를
[이동순 시인의 추억과 사유] “오늘의 ‘창비’는 이시영 같은이의 ‘분투’ 덕택”
사실 <창작과비평>이 오늘과 같은 규모의 성세로 자리를 잡고 번성하게 된 것은 창비가 어렵고 힘들었던 고난의 시절을 안간힘으로 감당했던 모든 분들의 전심전력과 전력투구에 힘입은 것이리라. 우선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어린이날 떠오르는 선한 미소 ‘정채봉’
아동문학가 정채봉(丁埰琫, 1946~2001)이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 덧 스무 해가 넘는다. 전남 승주군의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일본으로 떠나 고아와 같았다.
등단 50주년 이동순 시인 21번째 시집 ‘고요의 이유’
올해는 나의 문단 등단 50주년이다. 말이 쉬워 오십년이지 어떻게 세월이 갔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 뜻 깊은 해를 그냥 보낼 수는 없어서 시집을 하나 준비했는데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내 첫 시집 ‘개밥풀’과 김주영 소설 ‘객주’의 인연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작가 김주영(金周榮, 1939~ )씨가 안동으로 나를 만나러 온 일이 있다. 내 첫 시집 <개밥풀>에 든 장시 ‘검정버선’의 시적 화자인 ‘길소개(吉小介)’ 노인을 소개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처연한 맘으로 영남일보 신왕 기자 편지를 읽다
세상을 떠난지 오래된 이의 편지를 읽는 일은 기분이 처연하다. 특히 글의 문맥에서 감사를 표시하는 대목, 따뜻한 덕담, 격려, 창작 열기를 부추기는 그런 대목을 읽는 일은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자유시’ 동인 기자출신 시인 서원동
흘러간 70년대 시절, 한때 “반시”와 “자유시” 두 동인지에 동시참여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만 선택하게 되어서 거주지 중심으로 “자유시” 동인을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버팀목 돼주셨던 김판영 외당숙
첫돌 전에 어머니를 잃고 나는 외가를 모른 채 자랐다. 친구들이 외가집 다녀온 이야기, 외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은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어느 먼 나라 이야기처럼 아득하기만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양왕용 시인의 뜻밖의 편지
평소에 편지나 전화 등 어떤 연락도 나누지 않았는데 어느 날 불쑥 뜻밖의 편지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편지는 대개 청탁이나 다른 목적을 지닌 것이 일반이다.
부안 기생 이매창 흔적, 애닲고도 눈물겹다
한 인물이 자기 시대를 벗어나서 계속 시간을 관통하는 경우는 썩 드물거나 극소수이다. 고전을 탐독하다가 불현듯 만나게 되는 인물, 그를 찾아서 흔적을 더듬는 일은 애달프고도 눈물겹다.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신협 “시는 혼으로 쓰는 것…시 정신이 결여된 시는 가짜”
신협(愼協, 1938~ )이란 시인이 있다. 본명은 신용협(愼鏞協)이며 필명이 신협이다. 충남 연기군 전동 출생이다. 그곳은 지금의 세종시가 되었다. 대전고,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김석주 시인, 35년 전 인연이 ‘페친’으로 이어져
서로 대면도 못했지만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되어 마음의 공감을 주고 받는 분들이 있다. 물론 사진과 프로필을 통해서 그분의 활동과 주요 관심사를 대하지만 글로써 이미 상당한 정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