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김석주 시인, 35년 전 인연이 ‘페친’으로 이어져
서로 대면도 못했지만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되어 마음의 공감을 주고 받는 분들이 있다. 물론 사진과 프로필을 통해서 그분의 활동과 주요 관심사를 대하지만
글로써 이미 상당한 정도의 인간적 이해와 친분이 쌓인 경우가 있다.
부산의 김석주(金石?, 1946∼ ) 시인이 그렇다. 내가 페이스북에 매일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 개인적 공간이 다중의 연결과 소통으로 확장이 되니 그 매력에 빠져서 나날이 글을 올리게 된다.
적어도 1백여명 이상의 페친이 들러서 좋아요, 힘내요, 웃겨요, 멋져요, 슬퍼요, 화나요 등등 마음의 반응을 각각 나름대로 표시하고 소감까지도 혹은 짧은 단문으로 혹은 무척 긴 글로 답을 올려주기도 한다. 그냥 읽기만 하고 얼른 나가는 눈팅까지 더하면 훨씬 그 숫자는 많으리라.
페이스북이란 이런 점에서 참으로 놀랍고도 신통한 기적의 도구이다. 좌절과 낙담에 빠졌을 때 위로와 격려를 얻기도 할 뿐만 아니라 깊은 신뢰와 결속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부정적 작용도 있다.
사회적 관계망이 지닌 위력을 악용하거나 개인의 불온한 기회로 쓰는 그런 경우들도 간혹 보게 된다. 다행히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시 페친 관계를 청산하고 단절 차단해버리면 된다. 상대는 그것을 즉각 눈치채지 못하니 때로는 홀가분하기도 하다.
최근 대선을 치루면서 서로의 노선이나 성향이 단번에 노출되어 난감한 경우를 겪은 그런 일들도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페이스북이라는 소통도구의 미덕은
크고 넉넉하며 풍부함으로 넘친다. 이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미덕이나 즐거움이
불편이나 고통보다는 더욱 크다.
김석주 시인은 경산 자인 출생으로 대구상고를 거쳐 건국대를 다녔다. 등단은 1986년이다. 시집도 여러 권 발간했는데 “조선고추” “우리들의 아침”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곡예사의 피리” 등이 있다.
내가 아침마다 올리는 글에 꼭 들러서 격려와 용기를 부추기는 말씀을 항상 주신다. 어느 날 내 편지 스크랩북을 뒤적거리는데 1987년에 보내주신 편지가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5년 전의 편지다. 종이도 누렇게 빛이 바랬다. 그런데 내가 페이스북을 시작한 뒤 다시 이 공간에서 연결되어 새로 소식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김 시인도 당신의 옛 편지를 보시고 깜짝 놀라며 그때 기억으로 무척 반가워 하시리라. 생각할수록 즐거웁고 흐뭇한 일이다. 이날까지 건강하게 살아오셨으니 우리가 여기서 페친으로 만날 수 있었다. 그간 무탈하신 것이 새삼 고맙기 그지 없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李東洵 詩人님
미천한 시집 보아주시고 과찬의 말씀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작 글로나마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이렇게 늦게사 필을 들게 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양심적인 인간으로 돌아갈 때 사회는 이렇게 시끄럽지도, 문제들이 이렇게 심각하게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물적인 행동이나 비인간적인 판단들이 곳곳에서 활개를 칠 때 어느 한 쪽에서는 고민하게 되는 무리가 생겨나게 되고 결국은 참을 수가 없어 갖가지 방법으로 맞서게 되는 것이겠죠.
李 사백(詞伯)님,
모든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움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처방을 사백님께서 좀 내시지요. 넋두리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詩 많이 빚으시길 바랍니다.
1987년 3월 30일
부산에서
김 석 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