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양왕용 시인의 뜻밖의 편지

양왕용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평소에 편지나 전화 등 어떤 연락도 나누지 않았는데 어느 날 불쑥 뜻밖의 편지를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편지는 대개 청탁이나 다른 목적을 지닌 것이 일반이다.

양왕용  시인

양왕용(梁汪容, 1943~ ) 시인은 남해 출생이다. 경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을 마친 뒤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춘수 시인이 길러낸 제자 중 한 분이다. 등단도 1965년 “시문학”지를 통해 김춘수 시인의 추천으로 나왔으므로
여러 수제자 중 하나이다.

작품 분위기도 김춘수적 스타일과 규범성을 철저히 신봉하는 것으로 보인다. 발간한 시집으로는 “갈라지는 바다”, “달빛으로 일어서는 강물”, “여름 밤의 꿈”, “섬 가운데의 바다”, “버리고 그리고 찾아보기”, “로마로 가는 길에 금정산을 만나다” 등이 있다.

부산대 국어교육과의 현대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여러 권의 연구서도 펴내었다. “한국근대시 연구”, “정지용 시 연구”, “한국현대시와 기독교 세계관”, “한국현대시와 지역문학” 등을 펴내었다.

본인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그의 생활이나 창작에는 철저한 신앙심이 바탕으로 설정되어 있다. 평소 허튼 소리나 농담도 잘 하지 않고 항상 반듯하면서도 모범적 규율을 철저히 지키는 청교도적 삶의 실천에 주력하는 분이다. 학부는 나보다 훨씬 선배지만 대학원을 늦게 입학해서 그 관련 정보 나누기로 만나면 서로 관심사를 주고받으며 친해졌다.

양왕용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이 편지는 충주 양채영 시인의 충북대 교육대학원 응시문제로 도움을 청하는데 나는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육대학원은 사범대 관할이기 때문이다. 국문과는 일반 대학원만 관리했다. 대학에서 이런 영역의 구분은 철저했다. 설혹 내가 교육대학원 입시에 말을 넣는 것은 그쪽에서 몹시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끝내 양채영 시인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가 입학해서 다녔는지 그것조차 모른다.

그러니까 양왕용 시인의 청탁편지는 나에게 아무런 불편이나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분과 함께 대학원 박사과정 수업을 듣던 그 시절도 벌써 30년 세월이 훨씬 넘었다. 이 편지 이후 어떤 소식도 없었으니 그간 잘 계시는지 궁금하다.

양왕용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李 東 洵 兄

뵈온 지도 꽤 오래 되었군요? 저도 덕택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李兄 소식은 경대(慶大)의 김기현 형에게 잘 듣고 있습니다. 좋은 집도 장만하시고, 박사과정 시험도 모두 합격하셨다는 소식도 알고 있습니다.

신학기에는 저도 수료한 뒤라 종합시험을 치고 시작해볼까 합니다. 李兄이 먼저 시작해야 제가 쉽겠습니다. 분발하셔서 좋은 논문 준비하십시오.

부탁해야 할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李兄이 충북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에 관계하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충주의 시인 양채영(梁彩英) 님이 이번에 응시할 모양인데 혹시 李兄을 찾아갈지 모르겠습니다.

양 시인과는 알고 있을 것이지만 저와는 20년도 넘는 우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이 추천시킨 사람이고 같은 집안의 숙항(叔行)이라 더욱 친합니다. 혹시 도우실 수 있다면 도와주십시오.

이번 겨울에는 청주에 들릴 때 꼭 연락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어 보고 양채영 시인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는데 좌우간 淸州에 가면 연락 올리겠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좋은 작품과 논문 많이 쓰십시오.

1987년 12월 12일

부산에서

梁 汪 容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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