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내 첫 시집 ‘개밥풀’과 김주영 소설 ‘객주’의 인연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작가 김주영(金周榮, 1939~ )씨가 안동으로 나를 만나러 온 일이 있다. 내 첫 시집 <개밥풀>에 든 장시 ‘검정버선’의 시적 화자인 ‘길소개(吉小介)’ 노인을 소개 받으려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길소개’는 내가 설정한 가공인물로 내 어린 시절 고향마을 주막거리에 살던 백정 삼술이를 모델로 삼은 것이었다. ‘길속에’란 말에 착안해서 천민 이미지를 살린 것. 김주영씨는 그 이름을 자기작품 <객주>의 주인공으로 쓰고 싶으니 동의를 해달라고 해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주영씨는 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했던 터라 그날 막걸리를 마시며 취중에 묵시적 동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김주영씨는 이후 두어 차례 안동을 다녀갔다. 자신의 청년시절 안동전매서 직원으로 잎담배 수납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내 거리를 걷다보면
지인들이 꽤 많았다. 서점 주인, 식당 주인, 술집 주인 등등 수시로 인사를 나누며 지나갔다.
주영씨는 자기 고향 청송 진보로 나를 초대했다. 그때 안동에서 어떤 사람과 만나 같이 오라고 했는데 그 동행인이 작가 김호운(金浩運, 1950~ )이다. 경북 북부지역 출생으로 주영씨와는 친밀한 사이로 보였다. 우리는 안동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안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보로 떠나는 버스를 탔다. 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스에 내려서도 신작로 길을 한참 걸었다. 주영씨의 생가는 진보장터 중간에 있었고 모친은 장터의 장꾼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곡물을 파는 듯 했고 집은 작은 방이 두어 칸, 부엌이 전부였다. 어둑한 방안에는 누가 길게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주영씨의 아우라고 했다.
방안을 대각선으로 가득 채운 키가 몹시 크고 길어보였다. 나중에 잠이 깨어 인사를 나누는데 주영씨만큼 기골이 장대하였다. 형제이긴 하지만 썩 다정해보이진 않았고 그저 데면데면한 느낌이 들었다.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주영씨 모친이 해주는 밥을 먹고 다음날 안동으로 돌아왔다. 김호운과는 20대 시절, 두어 번 만나고 두어 차례 편지를 나눈 게 전부다. 그는 숭실대 중국언어문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겨울 선부리”, “무지개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장편 “빗속의 연가”, “불배”, “풀잎사랑”, “바람꽃”, “황토”, “님의 침묵”, “크레타의 물고기”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창작집도 발간했다.
한국문협 부이사장,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등 단체활동도 왕성히 해온 것으로 보인다. 내 스크랩에 김호운의 편지가 두어 통 눈에 띤다. 20대 시절, 그가 어느 잡지사 기자를 할 때 원고청탁으로 보낸 내용이다. 그를 만난 것이 어언 40년 세월이 넘었다. 인생길에선 이렇게 바람처럼 잠시 만나 스쳐지나간 사람이 많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바람결에 안부를 전한다.
李 東 洵 형
보내주신 작품 잘 받았습니다.
책은 6, 7월 경에 발간됩니다.
오랜 만에 대하는 李兄의 글을 받고
반가운 마음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 만나서 그간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화보를 꾸미는데
컬러사진이 필요합니다.
여행 가서 찍은 거라든가
가족과 함께 찍은 것이 있으면
1장 보내주십시오.
그럼 가까운 날
언제 한 번 뵙게 되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1986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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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호 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