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김규동 선생님 시정신은 어둔 밤 등불처럼 또렷”
서가에서 예전에 보던 책을 문득 꺼내어 펼치는데 책갈피 사이에서 편지 하나가 툭 떨어진다. 집어들고 보니 낯익은 필체다.
김규동 시인께서 직접 보내주신 친필편지. 읽을수록 장엄하고 바하의 무반주첼로 선율을 듣는 듯하다. 돌아가시기 불과 1년 전에 쓰셨다.
선생님께서 세상을 뜨신지 어언 11년,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는데 엄정하신 선생님 목소리와 시정신은 어둔 밤 등불처럼 또렷하다.
편지에서는 선생님 문학에 대해 아주 중요한 코멘트를 말씀하고 계신다. 이토록 형형한 정신의 등불을 켜고 평생을 외롭게 살아가신 김규동 선생님.
살아생전 전집을 내신다는 게 몹시 쑥스럽고 마음이 불편하셨던가 보다. <김규동 시전집>을 다시 꺼내 읽으며 선생님 가슴 속 풍경을 헤적여본다.
* 이 글을 김규동 시인의 아드님 김윤 선생께서 보시고 다음과 같은 소감을 보내주셨다.
이 교수님, 11년 전 시전집에 뛰어난 비평 써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당초 선친이 전집 간행을 반대하셨지만 그래도 생전에 내드린 것이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돌아가시기 전부터 지금까지의 교수님 후의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김 윤 拜
이 동 순 교수님
오래 못 뵈었습니다.
건강하시고 댁내 다 안녕하십니까.
학교는 아직 개강 중이겠지요.
소생은 그 동안 몇 달 동안
건강이 안 좋아 병원치료했으나
지금도 여전히 나빠 누워 지내는 형편입니다.
전집이라는 것은 죽은 다음에 내려했는데
집 얘들이 교정 못 본다고 서둘러 내게 되었는데
창비에서 만들어주기로 했나이다.
이 선생께서 김규동을 말씀하는
글 좀 써주십시오.
모더니즘을 해보고 싶었으나
살아가다 보니 해야 할 더 급한 일이 너무나 많아
반 모더니즘이 되고 말았습니다.
귀환은 고향입니다.
좋은 말로 말해서 ‘모더니즘을 거쳐
리얼리즘에로’ 라고 할까요.
그러나 이것 역시 천만의 말씀이겠습니다.
창비에서 애초부터 이 선생께 청탁 올리자고 했으니
그쪽 문학 팀이 잘 안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거듭 잘 부탁 올립니다.
건필하십시오.
기력을 찾을 수 있게 되면
찾아뵙겠습니다.
2010년 11월 14일
김 규 동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