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친일문학론’ 임종국 “작은 일이라도 변절(變節)은 변절”이니까요

임종국 친일연구가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학론> 한 권만으로도 우리 시대의 서슬푸른 선지자이셨다.

민족사의 암울한 안개를 걷어내고 자랑찬 역사를 일으켜 세우려 뼈를 깎는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셨다.

이런 분께 가까이 다가가 잠시나마 친견을 할 수가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청복을 누린 셈이다.

돌아가시기 직전 직접 찾아가 선생님께 억지를 부리고 강짜를 놓았으니 나도 어지간했다. 이제 세월이 지나서 보니 그렇게라도 선생님을 직접 겪은 것이 흐뭇하고 자랑스럽다.

그때 내가 트집을 잡은 것은 선생님이 편지에서 쓰신 ‘변절’이란 단어,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

임종국 선생이 이동순 시인에게

李東洵 氏 귀하

안녕하십니까?
서신 잘 읽었습니다.
어떠한 동기에서든 간에,
저는 개인적인 용도에의 자료협조에는
불응하기로 작심을 했더랬습니다.
한번 작심한 것을 바꾸도록
말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이지만 그것도 변절(變節)은 변절이니까요.
인간적으로는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제 작심(作心)을 바꿀 입장이 아닌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시기 바랍니다.

1987년 11월 26일

林鍾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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