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의 추억과 사유] ‘동아일보’ 소설 등단 이태호의 판화 ‘책벌레’
내 친구인 조각가 이태호(李泰豪)의 인상적인 판화작품입니다. 제목은 ‘책벌레’, 혹은 ‘간서치(看書痴)’입니다. 아래쪽에 연필로 쓴 친구의 서명이 있습니다.
그는 1973년 동아일보 소설 당선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본업인 조각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친구를 20년 만에 다시 만나 그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양평 지평리에서 지난 시절 살아온 강물 같은 이야기를 자정이 넘도록 도란도란 나누며 그립던 친구를 마음껏 흠씬 누렸습니다.
바로 이런 시간이 행복이란 실감을 했지요.
친구는 김수영 시인에 푹 빠져있습니다. 김수영 시비도 제작했고 ‘푸른 김수영’이란 판화도 만들었습니다. 온갖 돌멩이에 서려있는 역사성을 성찰하며 ‘근대 짱돌의 역사’란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친구에게 선물 받은 판화를 서가에 우선 걸어보았습니다. 사다리에 걸터앉아 독서삼매에 빠진 사람은 친구 같기도 하고 또 나 같기도 합니다.
오래 오래 바라보며 즐깁니다. 예술가가 살아가는 삶의 길을 느끼게 합니다. 곧 액자에 넣어서 제대로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