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처연한 맘으로 영남일보 신왕 기자 편지를 읽다
세상을 떠난지 오래된 이의 편지를 읽는 일은 기분이 처연하다.
특히 글의 문맥에서 감사를 표시하는 대목, 따뜻한 덕담, 격려, 창작 열기를 부추기는 그런 대목을 읽는 일은 슬프고 목이 메인다.
특히 건강을 기원하는 대목이야말로 가장 가슴이 저려온다.
내가 보낸 시집 한 권으로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 은밀히 고백하는 그 대목에 이르러서는 일단 큰 숨을 한 번 쉬고 생전의 그를 다시 추억해본다.
이 글의 주인공은 신문기자였다. 대구 영남일보 공채기자로 활동하다가 1980년 5월 전두환의 무단정권 폭력을 겪으며 영남일보가 매일신문으로 강제 통폐합될 때
그 당시의 비운의 멤버였다.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던 신문기자가 일터를 강제로 몰수 당하고 이웃 신문사의 기자로 굽히고 들어가는 수모를 어찌 감당하고 받아들였던 것일까.
그렇게 한 지붕 두 가족의 불편하고 어정쩡한 동거를 7년이 넘도록 하다가 1988년에 이르러 영남일보는 다시 부활되어 기자들도 옛 터전으로 되돌아 갔다.
편지의 주인공 신왕(申汪, 1935~?) 기자는 영남일보 복귀 전에 세상을 떠났다. 워낙 굴욕의 삶에 염증을 느껴서 물결처럼 흘러 여기저기 바람처럼 떠돌며 새로운 삶을 궁리하고 모색하지 않았나 싶다.
그 사이에 간간이 만나게 될 때 늘 말없이 잔잔한 미소만 짓던 그의 모습과 표정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매일신문 기자직을 미련 없이 내던지고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수필가로 등단도 했었다. 동해안 칠포리에 멋진 땅을 사서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새로 집을 지었으니 한번 놀러오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그 직후 병을 얻어 몸져 누웠고 얼마 뒤에 바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타계한 지가 어느 덧 40년 세월이 가깝다. 육신은 진작 부서지고 없어도 편지 속에서 필체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린다.
자신은 지금 죽고 세상에 없는데 여전히 책도 읽고 생각에도 잠기며 자신이 행복하다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시집을 오래 간직하겠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인가. 옛 음반을 축음기 위에 올리고 틀면 죽은 지 오래 되는 가수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린다. 편지도 음반의 원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거기서 세상 떠난 이의 음성과 체취가 들린다.
안녕하십니까?
저에게까지 작품집 보내주셔서 고맙고요.
여러 번 뒤적이며 읽고 있습니다.
가까이 오래 오래 간직해야 할 작품들입니다.
동구 밖 언덕에 올라 뒷짐 지고
먼 산 보며 칼날을 세우시던 내 할아버지나
손마디 굵고 눈물 많던
내 어머니도 만나 보았습니다.
애 많이 썼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시는 이 선생님을 알고 있는
나는 조금은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건강하십시오.
또 더 좋은 작품 많이 쓰시고요.
1980년 6월 7일
申 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