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권정생 추모시 ‘민들레꽃’ 지은 오승강

오승강 시인의 시

진정 가련한 것, 세상에서 가장 낮고 비천한 것, 슬프고 처연한 것을 껴안고 사랑할 수 있어야 그를 시인이라 부를 수 있다고 시인 백석(白石, 1912~1996)은 힘주어 말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의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고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이’라고 했다.

이 대목은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의 기막힌 절창의 한 대목이다.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혼은 복되다’는 시적 담론도 펼쳤다.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도 슬퍼할 수 있는 존재가 시인’이라고 했다. ‘진실로 슬프고 근심스럽고 괴로워할 줄 아는 그런 존재야말로 시인’이라 했으니 이에 값하는 문학을 실천해간 시인이 우리 문학사 주변에 과연 몇이나 있는지 유심히 지켜볼 때가 있다.

일찍이 안동에서 산골교회 종치기로 지극히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아동문학가 권정생이야말로 백석 시인이 말한 진정한 슬픔의 세계에 도달한 문학인이었으리라.

이 권정생 작가의 문학정신에 주목한 또 다른 슬픔의 시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오승강이다. 1953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안동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평생 재직했다.

197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시집 “새로 돋는 풀잎들을 보며”, “피라미의 꿈” 등과 동시집 “분교마을 아이들”, “내가 미운 날”이 있다. 2003년에는 한민족글마당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시는 간결한 운율로 민중의 일상에서 시적 감동을 이끌어내며 억압 속에 시달리는 존재에 대한 연민을 다룬다. 이런 점에서 백석 시인이 말하는 슬픔의 문학정신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

1980년 나의 첫 시집 “개밥풀”을 받고 오승강은 이런 짧지만 강렬한 울림이 있는 편지를 원고지에 세로쓰기로 적어보냈다. 빠른 시일 내에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42년 세월이 지나도록 아직 상면조차 못했다. 영혼이 고운 시인, 진정한 슬픔을 아는 시인, 오승강의 시 ‘민들레꽃’을 함께 읽어본다. 이 시는 아동문학가 권정생에 대한 추모의 정을 민들레에 비유하여 쓴 시작품이다.

오승강 시인

빌뱅이 언덕 아래
낮은 집 마당에서
그 꽃을 만났어요

낮은 지붕이 만드는
그늘 속에
피어난 그 꽃을 보았어요

그늘 속에서도
환하게 핀 꽃
추위를 견디어 이겨낸 꽃

그늘 속에서도
그 꽃은 어쩜 그리도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상처투성이 몸으로
어쩜 그리도
환한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요

궁금해 자꾸 말 걸어도
아무 말 없이
그냥 환하게 웃기만 하는 꽃

제 이름과
제 향기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핀 민들레꽃이

빌뱅이 언덕 아래
낮은 집 마당 가득
웃는 봄을 풀어 놓았어요
                                      -오승강의 ‘민들레꽃’ 전문

오승강 시인의 편지

李 東 洵 님께

옥저(玉著) “개밥풀”
잘 받았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한 번 만나뵙길
기대하겠습니다.
지금도 저는
“개밥풀”을 머리맡에 두고 있습니다.
건필하십시오.

1980년 7월 7일

오 승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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