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시인의 유언장 1순위 민들레교회 최완택 ‘피리’ 목사

권정생 시인의 유언장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권정생 선생은 꽤 많은 현금을 유산으로 남기었다. 그간 받은 인세, 원고료 등을 한푼도 쓰지 않고 10억원의 돈을 계좌에 그대로 적립했다.

이 돈은 남북한어린이돕기에 쓴다고 당신의 친필 유언장에서 밝혔다.

그런데 이 유산의 관리자를 지정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 셋을 골랐다. 최완택 목사, 정호경 신부, 박연철 변호사가 바로 그 해당 주인공들이다.

그 유언장의 문장이 크게 감동적이다.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최완택 목사 설교하는 모습.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권정생 유언장의 1순위로 거명된 최완택 목사는 감리교 이현주 목사와 동기다. 기독교 환경운동의 대부로 불린다. 이명박정권의 4대강 사업이 지닌 위선과 사기성을 세상에 낱낱이 고발하는 활동을 펼치었다.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부친의 감화 속에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북산(北山)이라는 아호를 썼으며 어느 제과점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다가 자그마한 민들레교회를 열었다. 신자는 약 스무명 정도, 손으로 직접 쓴 편지 같은 멋진 내용의 주보를 복사해서 돌려보는 신자는 차츰 2천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최완택 목사의 민들레교회 주보

최 목사가 평생토록 애써 추구해온 일은 거대자본주의와 군사독재정권, 그들이 저지르는 온갖 부조리한 모순과 파괴 및 인권유린에 대한 저항과 인간성 옹호였다.

당연히 박해와 모멸과 억압이 뒤따랐고 가파른 환경 속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 특히 독재정권에 의해 무참히 파괴 훼손되는 이 땅의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기독교환경운동연대를 결성하고 대표로 활동했다. 그때부터 온몸으로 싸우며 막으려 애썼다.

이 최 목사를 정호경 신부의 소개로 천주교 안동교구청에서 단 한 번 만나뵌 적이 있다. 아주 소탈한 인상이었으며 힘찬 악수를 했다. 최 목사가 남긴 짧은 감동적 시가 떠오른다.

나는 조물주의 피리
그분이 부시는 대로
그분의 소리를 낸다
-피리(최완택)

최완택 목사는 어두운 시대, 몇 안 되는 의인의 한 분이었고 캄캄한 앞길을 환히 밝혀주는 등불이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그 최 목사가 지난 1980년 내가 보내드린 시집 <개밥풀>을 받으시고 보내온 편지를 오늘 공개한다.

최완택 목사가 이동순 시인에게

이 동 순 선생님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빕니다.
좋은 시집 “개밥풀”을 보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선생님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전화로 잠깐 이야기 나눈 이후부터는
아주 정겨운 사이처럼 느껴지니
참 신통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는 기다립니다.
우리네 ‘개밥풀’끼리 만나서 한잔을 기울이며
‘개밥풀’ 푸념을 나누는 날을…..

1980. 5. 26

서울에서

최 완 택 상(上)

최완택 목사가 자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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