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듯 살가운 송기원 “착하고 아름다운 이형, 시 열심히 쓰세요”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송기원이 보내왔던 편지가 눈에 띤다. 겉으론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살가운 정을 자주 보여주던 송기원 형, 명이(明夷) 독서회 멤버로 더욱 친해졌지만 나이가 나보다 몇 살 위의 형이다.
내가 신동엽문학상 받던 날, 동아신춘 비평 시상식 날 일부러 와서 따뜻한 축하를 전해주던 분, 경기도 화성 발안의 월문리 그 썰렁하던 시골집 집필실도 생각이 난다.
술도 잘 드시지만 노래도 잘 하고 송기원의 가슴엔 풍류가 넘실거린다. 불의에 대해선 완전히 불칼이다. 조금도 잘못된 것을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한번은 무슨 일로 같이 택시를 탔다. 기사는 찬송가와 복음설교 테이프를 크게 틀어놓고 행복한 표정에 젖어있었다. 간혹 그런 기독교인 기사가 있다. 자기도 종일 운전하면서 즐기지만 그걸 전교활동의 실천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큰 볼륨이 몹시 불편했으나 나는 거기 대해서 한 마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송기원이 돌연 고함을 질렀다. 매서운 욕설과 함께 호된 비판을 날렸다. “야, 이 개○○야! 이런 건 네 집 안방에서나 틀어!” 기사는 찍 소리 못하고 카세트를 껐다. 완전히 놀라고 겁먹은 얼굴이다. 나도 깜짝 놀라고 무서웠다.
송기원에겐 그런 당찬 저돌성이 있는 것이다. 전남 보성 출신의 송기원은 시골 장터에서 그렇게 우쭐거리던 거침 없는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가슴엔 활활 타는 불이 들어있고 그게 시와 소설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집 <월행(月行), 다시 월문리에서>, <배소의 꽃>,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인도로 간 예수>, <청산>, <안으로의 여행>, <또 하나의 나>, <사람의 향기>,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못난이 노자>, <별밭 공원>, <숨> 등을 잇따라 발표했고 최근에도 <누나>라는 자전적 성장소설을 발간했다.
지난날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마음 속 붉은 꽃잎”, “저녁”이란 시집도 깊고 아련하고 서늘한 느낌을 가슴에 남겨준 참 재능이 많고 뛰어난 문학인이다.
작품목록을 열거하고 보니 송기원은 참 열심히 살아온 문학인이다. 현재 전남 해남 백련재 문학의 집에 들어가 맹렬한 창작생활을 보내는 중이라 한다.
오래 못 본 친구가 그립다. 웃을 때 안경 속으로 실눈이 살짝 보이던 그 특유의 미소와 넉살이 그립다.
동순 형
차일피일하다가
이형께 책을 보내는 일조차도 많이 늦어버렸습니다.
가을도 깊어졌어요.
간혹 맑고 서늘한 낮술,
혹은 낮술에 취하여 나를 바라보던
이형의 맑고 서늘한 시선이 그립습니다.
몸은 어떠신지요?
어서 쾌유 되어서 그리운 얼굴들이
다시 만나기를 빕니다.
매번 술자리가 질펀하게 끝날 때마다
괜스리 이형께 미안했던 기분이 새롭습니다.
착하고 아름다운 이형이 자칫
술때가 묻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당분간은 술 대신 좋은 시나 열심히 쓰세요.
1986. 7. 18
기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