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한 시인의 편지 “광주의 아픔 때문에 늘 잠이 오질 않습니다”

권일송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1980년 5월 보낸 엽서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권일송 시인(1933~1995)은 전북 순창 출생으로 1957년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당선작은 ‘불면의 흉장’, ‘강변 이야기’ 등이다.

전남대 졸업 후 목포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박봉우, 윤삼하, 황명, 박정만 등과 ‘신춘시’ 동인을 조직하여 활동했다. 언론사의 논설위원과 현대시협 회장을 지냈다.

시집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도시의 화전민>, <바다의 여자>, <바람과 눈물 사이>, <비비추의 사랑> 등과 평론집, 수필집도 있다. 고향 순창에 시비가 세워졌다.

나의 1973년 동아신춘 시상식날 축하객으로 오신 여러 문단 선배 중 한 분이다. 김상옥, 정진규, 오세영, 황명, 윤삼하 등 여러 시인, 비평가들이 오셨는데 권일송 시인은 그중 키가 유난히 크고 굵은 검정 뿔테 안경에 그 씨익 웃는 특유의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격려를 해주셨고, 작품이 좋아서 앞으로 기대가 크다고 하셨다.

시집 <개밥풀>이 발간되어 보내드렸는데 이런 엽서를 곧바로 보내주셨다. 시원시원하게 써내려간 달필에서 그의 큰 키,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느껴진다.

권일송 시인

이 엽서를 1980년 5월말에 썼으니 전두환에 의한 광주 격동이 발생한 직후이다. 시인은 광주의 아픔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난동과 역사의 퇴행을 불러온 전두환이 최근 세상을 떠났다. 이날까지 단 한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호통을 치던 흉한 꼴을 어찌 잊으리. 그는 최후를 화장실에서 맞았으니 죄과에 어울리는 죽음 아닐까.

그보다 대역죄인으로 민족 앞에 사형을 받았어야 할 비루한 육신이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화두를 던져놓고 이 아침에도 도도히 흘러간다.

안녕하십니까?
시집 <개밥풀> 상재(上梓)를 축하하며,
보내주신 걸 애독하고 있습니다.
‘마왕(魔王)의 잠’이 깨어나는 곳……
민중의 들불……
오랜 인연인데
동도(同途)의 기쁨을 늘 느끼며,
더욱 정진을 빕니다.
안동 권씨 태사공(太師公) 할아버지 곁에,
오히려 이 시인이 건재한다는 걸
생각하면 든든합니다.
광주의 아픔 때문에
늘 잠이 오질 않습니다.
건투를!!

1980. 5. 30

권 일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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