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아코디언 건네고 떠난 ‘도반’ 배영순 교수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영남대 재직시절, 배영순(裵英淳) 교수란 분이 계셨다. 국사과 소속으로 나보다 두 살 위 동년배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늘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 활짝 웃는 표정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이 배 교수는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에 깊이 빠졌고 그 상념들을 틈틈이 기록해서 ‘배영순의 방하(放下) 생각’이란 칼럼을 문화일보에 오래도록 연재해오고 있었다.
그 분량도 상당했을 터인데 아직도 책으로 만들어지지 못해 아깝다. 좋은 글들이 참 많았다. 오마이뉴스에도 자주 글을 올렸고 각종 시국선언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었다. 지금도 인터넷 기사로 많이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서울대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은 “한말 일제초기 토지조사와 지세개정(地稅改正)에 관한 연구”이다. 조선후기 민란에 대한 논문도 여러 편이 있다. 2013년에 정년퇴임했으니 나보다 두 해 정도 빠른 셈이다.
얼마 전 그분의 근황이 궁금하고 함께 식사라도 나누고 싶어 대학으로 연락했더니 이미 여러 해 전에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몹시 충격이고 큰 놀라움이었다.
배 교수는 평소 기공수련으로 법사의 단계를 넘었고 늘 절제된 삶을 실천하며 건강을 배려하는 그런 규범적 삶을 살았던 분인데 어찌 그리도 일찍 서둘러 가셨는지 아쉽다.
배 교수와 관련된 추억은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만 떠올린다. 90년대 중반, 풍류를 즐기는 영남대 교수 여럿이 합동공연을 기획하고 모꼬지를 만들었다.
공연 타이틀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대중가요 ‘홍도야 우지마라’ 2절 가사 중 한 대목이다. 이 제목을 내가 정했는데 모두가 좋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의 어느 비어홀을 통째 빌렸다. 장소를 고를 때 매우 까다로웠다. 그날 여러 교수들이 장기자랑을 뽐내는데 염무웅 교수의 탭댄스를 특별히 선보이려면 반드시 목조바닥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염 선생님께서 특히 탭댄스를 잘 하시는 줄 익히 아는 독자들이 별반 없으리라.
아무튼 장소가 선정되어 그날 밤 공연을 하는데 염무웅 교수의 탭댄스, 내 아코디언 연주, 아무개 씨의 만담, 성악, 대중가요, 특정가수나 배우의 흉내내기, 판소리, 온갖 악기 연주, 한국고전 춤과 무용 등등 기기묘묘한 재주들을 선보이는 공연이었다.
나는 악기가 없어서 누군가에게 빌려서 갔다. 그 공연을 마친 다음날 배 교수가 나를 보자고 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그의 연구실로 갔더니 빨간 색 아코디언이 하나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이 악기는 독일에 사는 내 형님이 나에게 선물로 준 것이지요. 어제 이 교수 연주를 들으면서 이 악기를 이 교수께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참으로 뜻밖의 제의였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독일제 호너(Hohner) 아코디언으로 120베이스 짜리 예쁘고 소리 풍성한 악기였다. 나는 당혹과 감동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직도 나는 그 악기를 몹시 아끼며 여러 강의나 공연에 갖고 다닌다. 70년도 넘었을 악기가 소리도 여전히 짱짱하다. 그런데 내가 무심한 탓으로 그 배 교수랑 식사도 한번 나누지 못한 채 영원히 생사의 길이 갈라지고 말았다.
오늘 편지는 내가 시집 <봄의 설법>을 펴낸 뒤 배 교수에게 한 부 헌정했었는데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길게 두 장으로 적은 것이다. 워낙 길어서 다 못 옮기고 요점만 올린다.
선생이나 시인보다는 형으로 부르고 싶다는 것, 시집을 읽으며 특별한 편안함에 젖었다는 것, 특히 만해 한용운 시세계를 연상케 한다는 것, 내가 평소 등산을 열심히 다니는 모습에 대한 소감, 존경하는 염무웅 선생에 대한 자신의 느낌, 대학에서 동료로 만났지만 속마음으로는 도반(道伴), 즉 다정한 친구로 다시 지극한 마음으로 만나고 싶다는 것 등등 말하자면 은근한 우정고백의 편지였다.
평소 까칠하고 냉랭한 듯 보이는 배 교수가 이런 편지를 보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진작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자주 만나고 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보다 흐뭇한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그는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고 그가 선물로 준 아코디언만 내 곁에 있다. 나는 배 교수를 추억하며 이제는 귀퉁이가 낡아가는 아코디언을 손바닥으로 정겹게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