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봉’···한국·농민·농촌을 내몸보다 더 사랑한 우리들의 신부님

두봉 주교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안동시 목성동 언덕에는 가톨릭 안동교구청이 있다. 정호경 신부를 만나러 거기 가면 여러 동료 신부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어느 날 특별한 신부님을 뵈었다. 바로 프랑스인 두봉 주교이다.

첫 인상은 미소가 너무 밝고 환한 아저씨였다. 1970년대 후반 내가 처음 뵐 때 주교님의 나이 불과 50대 초반이었다. 1929년생이니 지금은 아흔이 넘으셨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교구장을 지내셨다.

본명은 르네 뒤퐁(René Dupont), 한국 이름으로는 음을 따서 두봉(杜峰)이다.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마친 뒤 1954년 한국에 오셨으니 한국생활 70년이 가깝다.

주교로서의 두봉 신부는 먼저 권위주의적 태도를 버릴 것, 교구운영에서도 사제 평신도 거리감을 없앨 것, 농촌사목에 최선을 다할 것, 농민들의 사회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 등 삶의 실질적 지표를 설정하고 활동했다.

특히 1979년 영양농민 ‘오원춘사건’은 핍박 받는 농민을 위한 고발과 정의의 실천으로 당시 독재정권은 정호경 신부를 구속하고 두봉 주교에겐 추방 명령을 내렸다. 이에 교황대사가 항의해서 추방은 보류되었는데 곧 10.26이 일어나 모든 것은 정상적인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너무도 빛나는 주교직 활동으로 교황청에서는 무려 4번이나 연임을 시켰다. 1990년 62세로 드디어 물러나 경기도 능곡의 행주공소를 지키다가 지금은 경북 의성 봉양의 문화마을에서 텃밭을 가꾸며 조용히 사신다.

언론사의 각종 취재요청에 적극 응하시고 TV 다큐에도 자주 출연하셨다. 올해 93세를 보내고 계신다. 일생토록 세 권의 수필집을 발간했는데 “사람의 일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기쁨”, “가장 멋진 삶”이 그것이다.

두봉 주교가 지은 한국어문법. 1965년 초판에 이은 1984년 개정판으로 보인다. 

놀라운 것은 1965년에 한국어문법 저서를 내셨는데. “Grammaire coréenne”가 그 책이다. 거의 전문적인 언어학자 수준이라 할 정도이다. 두봉 주교님과 오래 대면하진 못했으나 주교관에서 몇 차례 뵈었고, ‘육사문학의 밤’ 행사에 오셔서 격려사를 해주셨다. 그밖에는 TV 다큐를 통해 그분의 숭고한 생애에 감동하며 시청했다.

내 안동시절, 시집 “개밥풀”을 발간해서 드렸는데 이런 정성어린 답장을 보내주셨다. 온통 따뜻한 격려말씀으로 가득하다.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성인이 아닌가 한다. 주교님의 그 환한 미소를 다시 뵙고 싶다.

두봉 주교가 이동순 시인에게

천 주 교 안 동 교 구
DIOCESE OF ANDONG

+ 주의 평화

이 동 순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늘 수고가 많으시겠지요?
보내주신 시집 “개밥풀”은 잘 받았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틈을 내시어
좋은 시집을 내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시집이 널리 읽혀져 많은 이들에게
좋은 마음의 양식이 되기를 빌며,
수고해주신 교수님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1980. 5. 14

천주교 안동교구장

두 봉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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