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생명사랑·생명받들기 정호경 신부의 ‘남북이’와 ‘통일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그런 살뜰한 분이 있다. 정호경 루도비꼬 신부가 바로 그런 분이다.
내 나이 20대 후반, 안동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가졌고 친형님 이상으로 극진하게 사랑과 정성과 기도를 주셨던 분.
내가 문학의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있도록 엄정한 길잡이를 해주신 분. 수시로 제 길을 가고 있는지 직접 찾아와 확인 점검하고 관리해 주시던 분.
오늘 찾아낸 이 엽서는 신부님이 상주 함창성당 주임으로 계실 때 내가 아이들과 같이 다녀온 그 시절 추억의 실루엣이 들어있다.
당시 사제관 마당엔 두 마리 개를 키우고 있었는데, 이름은 ‘남북이’, ‘통일이’였다. 그 가운데 ‘통일이’란 놈이 병아리 가족의 평화를 깨어버린 뒤 다른 곳으로 쫓겨간 우화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통일을 위한 우리 민족의 노력도 주변 평화를 깨면서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섬세한 상징성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어미닭은 아기를 잃은 슬픔을 잊고 다시 일곱 개의 알을 정성껏 품어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기쁨의 소식도 전한다.
이렇듯 신부님의 삶과 관심은 온통 생명존중, 생명사랑, 생명 받들기로 일관했다. 그것이 동물이든 인간이든 가리지 않고 특히 인간의 생명경시 행태를 몹시 분노하고 꾸중하는 삶을 사셨다.
작은 엽서 한 장에 담은 글귀에도 신부님의 그런 크고 넉넉한 사상이 담겨져 있다. 새해가 되면 신부님 묘소를 찾아뵙고 술 한잔 올려야겠다.
+ 평화가
응(鷹), 단비에게
올 여름은 무척 더웠지?
영명축일 축하로 보낸
예쁜 그림, 정겨운 글, 그리고
맛있는 울릉도 오징어, 참 고맙다.
부모님도 안녕하시지?
방학에 하루쯤 놀러올 줄 알았는데!
참, 우리 집 개 통일이를 다른 집에 보냈지.
예쁜 병아리 집에 뚫고 들어가
병아리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죽였기 때문이다.
응(鷹), 단비와 정겹게 사진 찍고 했던
통일이를 가끔 보고 싶단다.
요즘 우리 닭이
먹는 것, 노는 것, 자는 것도 잊고
알을 품고 있어.
아마도 9월 1일쯤
예쁜 병아리 일곱 식구가 태어날 거야…
생각만 해도 신난다.
1987년 9월
정 호 경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