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신협 “시는 혼으로 쓰는 것…시 정신이 결여된 시는 가짜”
신협(愼協, 1938~ )이란 시인이 있다. 본명은 신용협(愼鏞協)이며 필명이 신협이다. 충남 연기군 전동 출생이다. 그곳은 지금의 세종시가 되었다. 대전고,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고려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충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4년 “심상”지를 통해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변명”, “낙엽으로 돌아와서”, “물가에 앉아서”, “어린 양에게”, “다시 사랑을 위하여”, “단순한 강물”, “독도의 꿈”, “긍정의 빛” 등이 있다. 기타 “맹물 철학 산책”, “현대한국시연구” 등이 있다.
1980년대 내가 충북대 국문과에 재직할 때 충남대 국문과 교수들과 가끔 만나고 교류했다. 그 일을 앞장 서서 주선한 분은 고전문학을 전공하던 충남대의 송백헌 교수다. 그는 충북대 사대에 재직하다가 대전의 충남대로 옮겼고 그 인연으로 그곳 교수들을 데리고 자주 청주로 놀러왔다. 때론 충북대 교수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당시 충북대엔 신용대(愼鏞大) 교수가 있었고 충남대엔 신용협 교수가 있었다. 알고 보니 두 분은 거창 신씨 인척 간이기도 했다. 재담에 능한 송백헌 교수는 신용협 교수에게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신용대 교수에겐 ‘신용대출 담당이사’라고 놀려서 좌중을 자주 웃게 만들었다.
그때 만난 신용협 교수의 인상은 전형적 충청도 기질로 말이 없고 잘 웃으며 어떤 경우든 그냥 씩 미소를 짓는 얼굴이었다. 자주 시집을 발간해서 보내올 정도로 열심히 활동하는 시인이었다.
그가 평소 늘 강조하던 말이 떠오른다. “시는 혼으로 쓰는 것이고, 시 정신이 결여된 시는 가짜”라고 했다. 시 정신이 약한 시는 낮은 단계의 시이고, 시 정신은 체험에서 얻어지며, 시는 체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문학이다. 가화가 아닌 생화와 같은 문학이 되어야 한다던 신협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오래 만나지 못했는데 최근 사진을 보니 어질고 푸근한 할아버지가 되셨다. 그가 쓴 옛 편지를 보니 날짜가 하필이면 통한의 1980년 5월 18일이다. 그 난리통에 이런 편지를 써서 보내주셨다.
李 東 洵 詞兄,
시집 “개밥풀” 잘 읽었습니다.
모아진 시집으로 여러 편을 읽으니
더욱 가깝게 체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자유시”에서 ‘내 눈을 당신에게’를 읽고
감명 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군요.
‘서흥 김씨 내간’의 구구절절이
우리들의 생생한 체험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릴 때의 체험이었지만
다시 피부로 느껴지는 군요.
귀한 시집 가까이 두고
늘 읽으며 시 공부에 도움을 구하겠습니다.
1980년 5월 18일
愼協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