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의 ‘제야’의 종소리, ‘통일절’ 그날 향해

2023년 1월 1일 0시, 3년만에 타종행사가 열리게 된 보신각.

드디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모두들 힘든 시간 살아오느라 노고가 많으셨다. 지친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온 우리 발자국이 등 뒤로 길게 찍혀 있는 게 보인다. 깊은 산중 등성이 눈밭에 찍힌 토끼 발자국 같다. 토끼는 어딜 간다고 저렇게 흔적을 남겼을까?

우리는 힘들었던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 섣달 그믐날 밤 제야에 종을 치는 관습은 불가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날을 제석(除夕)이라고도 하는데 종을 번뇌의 숫자만큼 108번을 쳐서 씻는다고 한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을 대회일(大晦日)로도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이날 궁중에 대포를 쏘아서 악귀를 물리치는 의식을 했는데 이를 연종포(年終砲)라고 일컬었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보신각 타종의식을 보러 전국에서 종로거리로 몰려드는데 6.25전쟁으로 깨어진 보신각 종을 1953년에 다시 중건해서 계속 쳐왔다.

그러다가 1985년에 낡은 종을 폐기하고 새로 만든 종을 매년 제야에 서른세 번을 울렸다. 국태민안, 무병장수의 간절한 염원이 그 타종의식에 담겼었다. 타종이 끝나면 연예인들의 공연도 펼쳐졌다. 그날 행사를 보러 가족들, 연인들은 오들오들 떨면서 뜻깊은 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너무 많은 인파가 종로거리로 몰려들게 되니 지하철은 종각역을 무정차로 통과했고 버스노선도 이날만큼은 보신각을 피해 우회했었다. 하지만 그 타종행사도 2020년부터 중단되었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는 행사 때문에 코로나 확산이 크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매서운 추위, 혹은 폭설 속에서 보신각 타종을 참관하며 새해를 맞이하던 그 추억도 이젠 과거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시끌벅적하게 진행되던 그 행사도 비대면 온라인 행사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제야의 종이 울리면 새해 달력을 펼쳐놓고 나는 통일절의 위치를 미리 궁리해보곤 했다. 어디쯤이 가장 좋을까?

그 덧없는 상상이 어찌 그리도 행복했던지, 독일이 베를린 분단장벽을 부수고 밤새도록 환호하던 광경을 부럽게 지켜보던 그날 밤의 감격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래  소개하는 시 ‘제야(除夜)’는 지난 1983년 발간된 나의 시집 <물의 노래>에 수록된 작품이지만 제야에 늘 다시 읽어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단은 요지부동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여전히 험난하다.

모두가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 제야를 맞이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2020년 1월 1일 새벽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서 ‘자이언트 펭TV’의 펭수가 인사하고 있다.


제야

새해 새 달력
한 곳 두 곳 짚어가며
통일절이 언제쯤일까 헤아리는 날
흰 눈에 덮인 채
오래 인적 끊인 저 빈들을 지나
두 눈에서 더운 봇물 콸콸 쏟뜨리며
석유 냄새 싸 하게 풍기는 호외 하나
높이 흔들며 달려올 그리운 사람을 생각한다

해마다 시절은 돌아와
사월에 핀 상사화가 다시 피든지
비 갠 오뉴월 어느 저녁
혹은 광복절에서 개천절의 중간쯤이 되든지
붐비는 서울역 광장에서
고향갈 차표 타러 꼬박 밤 지새는
저 수많은 날을 기약없이 살아온 어둔 얼굴들이
단 한 번 기쁨에 웃고 돌아갈 그날이 있을까

한 해도 저물고
섣달 깊은 밤 제야의 종은 우는데
얼룩진 달력 덮고 눈 감으면
일만 아우성 귀에 쟁쟁 내려 쌓이는데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운 사람은
지금 어디서 지친 몸으로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 가슴 깊이 보듬고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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