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치밀하고 올곧은 순국선열 조부의 친필을 대하며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으려 애써 분투하다 순국하신 저의 조부님
이명균(李明均, 1863~1923) 의사가 세상에 남긴 친필 간찰입니다.
글씨에서 당신의 치밀하고 올곧은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합니다. 대구의 어느 골동가게에서 우연히 구한 보물입니다. 이를 한학자 권경열님이 번역해주셨습니다.
조부님 사망원인은 대구형무소에서 왜적의 혹독한 고문으로 뼈가 부러지는 골절,
손목과 발목의 뼈가 이탈되는 수족탈골, 송곳이나 칼로 손톱 밑과 온몸을 찔리는 자상, 불로 지지거나 태우는 화상 등입니다. 생각할수록 치가 떨립니다.
지난번 그곳으로 갔을 적에 다행히 여러 군자와 함께 정사에서 읊조리고 지란지실(芝蘭之室)에서 토론을 하여 저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가르침을 들은 것이 많았습니다. 제 분수를 돌아보건대 가득히 무언가 얻은 듯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돌아와서는 오히려 옛날처럼 적막한 모양을 하여 저도 모르게 비루함이 싹텄습니다. 흉중이 흐려진 것이 고질이 되어 한 조각의 약물로 치료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삼가 청하건대 학문하시는 건강이 평안하시길 빕니다. 형제분과 자제도 차례로 일체 평안하신지요. 학업이 이제까지도 부족하지 않았는데, 다시 절차탁마의 공부를 더하여 점차 찬란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으니, 매우 부럽고 우러러보게 됩니다.
저 명균(明均)은 궁촌에 홀로 떨어져 살아 이처럼 일이 없는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으니, 근황에 대해 드릴 말씀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편지 중의 여러 훌륭한 시편(詩篇)들은 성의에 우러러 답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비천함을 잊고 감히 차운하여 바치오니, 모름지기 고명(高名)께서는 너그러이 여기시고 주제 넘는다고 나무라지 마시고 한바탕 웃음거리로 부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곳에서의 한 차례 회합은 지난번 유람 때의 미진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지를 적자니 허전하고 슬픈 마음이 배나 절실합니다. 그저 잘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임○년 5월 29일 손제(損弟, 자신의 겸사)
이 명 균(李明均)
저희 친족 윤중(允仲)의 근황은 어떠한지요?
또한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