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본군에 있으면서 창씨개명도 하지 않은 이종찬 장군을 단순히 친일군인으로 치부하고 말 것인가? 극악한 일제 치하에서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Author: 김국헌
백제 멸망시킨 소정방의 ‘정방폭포’ 앞에서 제주도 무비자 입국을 생각하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2000년 9월 남북국방부장관회담을 하며 제주도를 관광차 돌아보는데, 서귀포에 가니 정방폭포가 있었다. 그런데 이는 소정방의 이름을 땄다고 하지 않은가? 이때 불현 듯
영화 <나랏말싸미>의 진실 여부보다 더 소중한 것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한글창제 과정을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글창제를 반대한 것이 최만리만이 아니었다. 세종을 보좌하던 집현전 학사 거의 모두가 반대하였다.
“리더는 자식의 안위보다 국민이 우선”···앤드류 왕자의 포클랜드전쟁 참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미국 유학중 아들이 태어났다. 자신이 6남1녀 중 장남으로 본래 아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자라났지만 첫 아이를 본 아버지로서 그 기쁨은 이루
일본의 경제보복,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우정이 그립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일본의아사다 마오가 김연아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말로 김연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는 단순히 경쟁을 할 수
일본 ‘무사’와 한국의 ‘선비’가 맞붙는다면?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맹가는 추인鄒人이다. 공자는 노魯나라 사람이다. 그래서 추로지향鄒魯之鄕은 성인이 나온 곳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추로지향은 어디일까? 인조반정 이후 정권을 잡은 노론의 영수 송시열은
北 미사일 능력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세계 2차대전 중 독일군 암호를 해독한 수학자 튤링은 독일의 항복, 즉 2차대전 종식을 수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는 동성애자였다. 당시는
[휴가철 가볼만한 곳] 도산·병산·소수·도동·옥산·필암·도암·무성·남계 등 세계문화유산 ‘서원’ 9곳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대구 도동서원, 경주 옥산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도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함양
러시아의 독도 영공침범에 일본은 무대응, “독도는 우리땅” 더 분명해져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변영태 외무장관을 통해 일본에 보낸 공한에서 “한국은 독도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다루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명확히 입장을 밝혔다.
[한일갈등] ‘독도는 우리 땅’ 전시 세종로 이어 유엔에서도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일본 지도를 통해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증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우리 古地圖가 아니라, 가까이는 1880년대와 그 이전에 나온 수십
주한 일본대사관 욱일기와 일본제품 불매운동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욱일기(旭日旗)가 찢겨나갔다. 旭日旗는 일본의 국기가 아니다. 국기는 일장기(日章旗)다. 과거 해군기였는데 종전 후 1954년 자위대가 창설되면서 자위대기로 쓰고 있다.
[한일갈등] “문재인-아베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로 대화 통할 수 있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663년 백강 전투는 신라·당(唐)과 백제 부흥군과 왜의 결전이었다. 일본은 이 전투에서 패한 후 “구다라와 나이”(이제 백제는 없다)라며 한반도에 대한 정을 끊었다.
[한국전쟁 69돌] 백선엽·이종찬 등 만주군·일본군 출신 장군들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스파르타의 3백 용사가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페르샤의 대군을 막다가 전원 옥쇄한 역사는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다. 1950년 북한군의 8월 공세를 막아낸 1사단의
[6.25 한국전쟁 69돌] 신하균·고수 주연 영화 ‘고지전’과 가칠봉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휴전회담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동부전선의 고지전투가 혈전이었다. 이 승전이 없었다면 설악산은 우리 땅이 아니다. 설악산이 없는, 내린천이 없는 강원도가 하늘이 내린
[6.25한국전쟁 69돌] 중공군과 최고혈투 파로호전투와 금성전투···지금은 경제전쟁?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파로호 전투는 1951년 5월 중공군 2차 공세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국군6사단이 화천댐을 확보하고 중공군 3개 사단 3만명을 수장시키는 대승을 거둔 전투다. 사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