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가볼만한 곳] 도산·병산·소수·도동·옥산·필암·도암·무성·남계 등 세계문화유산 ‘서원’ 9곳

도산서원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 소수서원, 대구 도동서원, 경주 옥산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도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함양 남계서원 등 총 9곳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전통의 공간이자, 중국의 성리학이 한국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사학의 공간과 선열에 대한 존경의 공간이 어우러진 문화유산은 한국의 서원밖에 없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95년 처음으로 등재된 석굴암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를 비롯해 14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소수서원

공자와 맹자는 중국에서 나왔지만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이 유교의 본거지는 아니다. 반제·반봉건을 내건 중공에서 유교는 봉건제의 근거로서 배척되었다. 1960년대 중반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중공을 휩쓸면서 유교에 대한 공격이 광풍이 되었다. 비림비공(非林非孔)이 바로 그것이다.

중공에 비해 유교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던 중화민국(대만)에서도 유교는 퇴폐했다. 대만에서는 손문의 삼민주의가 철학의 전부였다. 그들은 석전제(釋奠祭)를 우리 성균관에 와서 배우고 갔다.

오늘날 중국은 중공,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의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IOC가 주관하는 올림픽에서 이들이 각자의 깃발을 드는 것이 상징한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이는 엄연히 드러났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영국의 연장이지 중국의 분신이 아니다. 앞으로 백년 내에 티베트와 위구르가 독립되면 이 구도는 보다 정확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후 조선에서 건너간 퇴계학이 융성하고 강희자전을 확대한 大漢和字典도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의 일반인들에게 유교는 낯설다. 그들에게는 불교가 신앙의 중심이다.

성리학에서는 우암 송시열이 공자, 맹자, 주자와 같이 宋子로 숭앙된다. 송시열은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것이 明나라라고 보았다. 명나라가 망하고 청이 흥기한 후에도 조선에 파병한 明의 神宗을 받들었다. 효종의 북벌은 인조가 청나라에 당한 것(三跪九叩)을 설욕하기보다도 神宗의 원한을 갚아야 한다는 명분이 강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의병의 공을 인정하는 것은 논외였다. 이순신의 “若無湖南 是無國家”가 증명하듯이 한산대첩은 호남으로의 왜군의 진출을 막아 임진왜란의 大局을 구했다.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은 왜군을 심각하게 교란했다. 크게 보면 이순신과 의병이 조선과 중국을 구했다. 그런데도 이연(선조)은 광주의 김덕령을 장살(杖殺)했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조선의 주류세력이었다.

세종대왕릉이 있는 영릉에 송시열을 모시는 大老詞가 있다. 조선에서 송시열은 大老로 불리웠다. 중공에서 등소평이 鄧老라고 불리는 것과 같다. 송시열은 괴산 화양동에 신종을 제사 지내는 만동묘를 지었다. 흥선 대원군은 만동묘를 제일 먼저 철폐했다. 중국에 대사로 부임하여 “황하는 만번을 굽어도 동으로 흐른다”고 하여 천자에 대한 충성을 다짐한 萬折必東의 글귀를 적은 이가 있었다. 이는 중국과의 친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무식의 소치다.

서원이 가진 긍정적인 진정한 가치와 아울러 폐해도 돌이켜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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