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의 진실 여부보다 더 소중한 것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한글창제 과정을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글창제를 반대한 것이 최만리만이 아니었다. 세종을 보좌하던 집현전 학사 거의 모두가 반대하였다.
백성들이 글을 알게 되면 권력의 독점이 상실되고, 새로 문자를 만든다는 것이 중국에 알려지면 책임을 추궁받는다는 것이었다. 세종의 애민정신은 투철하였다.
사대교린事大交隣을 대외정책의 기본으로 하면서도 민족주의 의식이 철저하였다. 세종의 108자로 된 훈민정음 반포문에 모두 정리되어 있다.
“愚民이 以所欲言 하여도 乃終不得其伸情者 多矣라 余爲此憫然하여 新制二十八字하노니 欲思人人으로 易習하여 便於日用而니라.”
조선은 양반 가산家産 국가라 한다. 양반은 과거로 입신한 지배층이었다. 그중에서도 문반이 주류였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구분이 철저했다. 양반은 과거로 입신하여 왕에 충성하고 백성 위에 누리는 것이었다. 중국의 황제에 대하여서는 王도 신하이며, 大夫, 士도 신하라는 입장이었다.
세종과 승려 신미信眉는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梵語)를 참고로 하였다. 영화에 따르면 한글은 세종과 신미가 공동저작자라고 한다. 신미가 불교의 경판을 달라고 애걸하는 일본 승려와 산스크리트어로 소통하는 광경이 나온다. 梵語는 당시 동양의 라틴어였던 것이다. 불경이 범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소개되자 이를 기반으로 하여 고도의 형이상학을 갖춘 주자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주자학을 개신유학改新儒學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고려 말에 수입된 주자학은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祖 정몽주를 거쳐, 이퇴계의 성학십도聖學十圖로 정리되어 성리학으로 정립되고, 임진왜란 후에 일본에 도입되어 퇴계학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족漢族을 정복하여 요금원遼金元을 만든 거란, 여진, 몽골은 각각 문자를 만들게 된다. 표의문자인 漢字 이외에 자기들이 쓰기 쉬운 소리글자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성은 세종 이전에 단초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평가되고 있다. 현재 한글을 차용하여 나라글자로 삼는 나라가 몇 있다.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소수민족을 위한 별도의 인터넷을 만들었을 리 없다. 이들이 인터넷에 접근하지 못하면 문명 세계에서 자동적으로 소멸하고 만다. 위구르, 몽골, 티베트족도 한글을 쓰면 이미 만들어진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다.
한글 창제에 집현전 학사가 반대했고 최만리가 이름 오르는 것은 소소한 일이다. 세종의 왕자와 공주들이 참여했고 궁녀들이 참여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글학회 등에서 영화가 한글 창제의 정설과 다르다는 주장은 신중해야 한다. 한글 창제의 모티브를 같은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를 참조했다는 것은 큰 수확이다. 지금까지 학자들에 심각하게 운위되지 않던 이야기다. 애민의 계몽군주로서 세종은 다시 새겨 보아야 할 우리 역사의 자랑이다.
값 있는 우리 역사를 찾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아저씨부터 말조심해야할듯한데요 산스크리트어 기반 아니라고 팩트인 연구결과가 있는데 모르면 좀 가만히나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