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단상] 말고기 먹는 일본···“I can eat a horse”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영어에 “I can eat a horse”란 말이 있다. 배가 너무 고프다는 말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서양에서는 말은 귀한 동물이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백인은 말을 타고 총을 소지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유럽에서는 딸이 크면 말을 선물로 준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는 말고기를 먹는다. 우리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같다.
1857년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지급한 신식 총에 소와 돼지의 기름이 칠해있었다. 힌두교도에게는 소는 신성한 동물이었고 회교도에는 돼지가 금기였다. 여기에 자극받은 세포이(용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동인도회사의 지배에 항거하던 인도인들의 반란이 뒤따랐다. 영국은 이를 진압한 후 인도를 동인도회사가 아니라 본국이 직접 통치하기로 했다.
보신탕은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먹는 사람이 적었고 6.25 전쟁 이후 북쪽에서 온 사람들에게서 개고기 먹는 풍습이 퍼진 것이다. 군에서는 흔히 포병부대에서 보신탕을 먹는데, 전후 포병이 대거 확장되면서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 포병에 많이 들어와 보신탕을 퍼뜨린 것이다.
역으로 북에서는 생선회를 먹는 것이 드물었다. 남쪽에서 올라간 것인데, 한국에서 생선회가 퍼진 것은 일본군에 다녀온 장교들에 의해 퍼진 것이다. 1990년 9월 남북국방장관 회담에 제주도에 온 김일철 등 북의 대표단은 남쪽에 다녀온 사람들한테 들어서인지 최고급 어족인 다금바리를 먼저 찾았다.
한국 사람에게 소는 잡아먹는 짐승이 아니라 같이 살고 죽는 食口였다. 이는 영화 <워낭소리>에 잘 그려져 있다. 일본에서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는 육식을 금했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영양분을 바다에서 구했다. 생선회가 발달한 이유다.
중동에서는 양고기를 많이 먹는데 중동사람에게서 나는 독특한 노린내는 양이 먹는 풀에 들어있는 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88서울올림픽을 전후에서 한국을 방문한 많은 서양 사람에게 보신탕은 설명하기 힘들었다. 그들에 보신탕은 애완견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식용개는 따로 있다고 설명해도 이해시키기가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잡식성의 개가 갖는 독특한 효능 때문에 보신탕이 약이라고까지 강변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보신탕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구역질을 한다. 보신탕을 영양탕이라고 부르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다. 앞으로는 보신탕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보신탕 즐기는 세대가 사라지고 보신탕 식당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개의 도축을 법으로 금지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호응이 있을 것 같다. 1인가구가 날로 늘어나는 사회에서 애완견을 가족과 같이 끼고 사는 노인도 날로 늘어난다. 남이 싫어하는 일을 자기는 좋다고 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복날이면 보신탕 먹는 것을 취향으로 설명하지만, 그것이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이런 일은 이밖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남의 정서도 헤아려가며 사는 것이 민주사회와 현대사회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