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만한 곳] 충청도 천안·예산·부여·금산···윤봉길·김좌진·김정희 나온 ‘충절의 고장’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조선 사대부의 시각적 의사소통을 위하여 남겨 놓은 전형적인 결과물이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천안역에는 충청도가 낳은 인물과 역사, 지리를 그린 사진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충청도를 청풍명월淸風明月로 기술했다. 부여는 우리 고대사가 만주의 부여에서 고구려로, 백제로 연결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다시 일본으로 이어진다.

아키히토 일왕이 자신에 백제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 것은 이를 말한다. 일제 말기 화산, 지진이 많은 일본은 수도를 부여로 옮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오늘날에도 백제 유적에 일본 관광객이 많은 이유다.

금산에는 의병장 조헌 등 7백 의병이 묻힌 칠백의총이 있는데 김시민의 진주성 순절과 같다. 임진왜란에 바다에서는 이순신, 육지에서는 의병이 일본에 큰 피해를 입혔다. 명나라 원군은 초기에 평양을 회복한 것 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체찰사 류성룡都體察使 柳成龍은 이들 뒤치다꺼리에 기진맥진氣盡脈盡했다.

김좌진 장군 생가 <사진=홍성군청>

석오石吾 이동녕은 임시정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주석 사이에서 국무령을 네번이나 지냈는데 임정을 실질적으로 꾸려온 분이다. 오늘날에는 유관순 의거 터 아우내로 가는 길에 조촐하게 이동녕 생가라는 표지만이 있을 따름이다. 윤봉길은 예산 출신인데 1932년 윤봉길의 상해 의거는 중국 장개석蔣介石 총통이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 독립을 제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예산은 김정희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의 추사체는 서예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중국의 화성書聖으로 일컬어지는 왕희지王羲之에 비견된다. 김정희는 시서화 詩書畵 삼절三絶의 대가였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라는 그의 세한도歲寒圖는 선비의 품격을 보여주는 대표적 문인화로 국보 제180호다.

홍성에서는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이 났다. 당시 강성을 자랑하던 일본군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일본군은 분풀이로 1920년 10월부터 석 달 동안 간도의 동포를 살육했다. 박윤식은 “역대 전쟁사상 군사를 놓아 살육 약탈한 자가 수없이 많지만, 저 왜적처럼 흉잔 포악한 자는 들은 적 없다. 왜적이 서북간도의 양민동포를 학살한 것과 같은 것이야 어찌 역사상에 있었던 일이겠는가”라고 울부짖었다.

경신참변은 1937년 30만명을 도륙한 남경 대학살의 전철로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같은 차원의 인류의 죄악이다. 조선 말기 1894년 우금치에서 동학 농민군은 일본군에 의해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었다. 이에 비해 일제 말 정신대와 징용공은 소소한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 차령 이하에서는 사람을 쓰지 말라는 것은 오래 동안 후백제 견훤과 겨루었던 데서 나온 것이지만,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왕건의 수하에는 후백제 출신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과 김종필의 DJP 연합 이래 대권을 위해서는 충청도 인심을 잡아야 한다는 정치 셈법이 유행하고 있다. 문재인 이후가 좌파와 보수의 이념 대결이 될 것이지 충청도 민심이 여전히 관건을 쥐는 지역대결이 될 것인지 두고 보자. 박찬주의 역사의식과 정무감각의 저조함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예비역 장군들이 얼굴을 못 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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