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2019년 소녀상 그리고 1940년대 위안부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관동군이 패전하며 만주에 들어온 소련군은 일본인들을 남녀 없이 강간했다. 아무리 소련군이라도 강간은 다스리지만 스탈린은 전투에 거칠어진 병사들이라고 못본 체 했다. 일본 여자들은 여기에 낯설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면 당하는 일이니 참으라고 했다.
1931년 만주사변 이래 1937년 중일전쟁으로 확대되어 1945년 종전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일본군의 만행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남경점령 후 민간인 30만 학살은 대표적이다. 공리가 나오는 영화 <붉은 수수밭>에서 일본군은 농민을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죽인다.
1945년 8·15 종전 후 장개석蔣介石은 일본에 은혜로서 원수를 갚자(以恩報怨)고 중국인에 호소하여 일본인을 그대로 돌려보냈다. 참으로 감읍感泣할 일이었다. 1992년 일본이 중국과 수교할 때 양식 있는 일본인들이 중화민국에 죄송해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조선에서도 이러한 행운을 입었다. 남의 김성수와 북의 조만식 등 민족 지도자들의 힘이 컸다.
그러나 북한에 진주한 붉은 군대는 만주에서와 같이 일본 여성을 무차별 폭행했다. 일본인들은 이 쓰라린 기억을 이야기하려 않는다.
세계의 1/6을 지배한 대영제국의 영광이 보여주듯 영국은 성공한 역사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영국을 침략하여 영국 땅에 발을 딛지 못했다. 여성들이 고난을 당하면 무엇보다도 그들을 지켜내지 못한 남자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다. 반면, 나치 독일에 침공당한 프랑스에서 독일군을 상대했던 직업여성은 프랑스가 연합군에 해방되자 머리를 삭발당하는 등 린치를 당했다. 이에 드골은 과도한 확대를 막았다. 나라를 다시 건설해야 할 마당에 이런 문제로 너무 소란을 피울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위안부 문제는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일이다. 이를 성노예 등 자극적인 용어를 쓸 것이 아니라 ‘불행했던 과거문제’ 정도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할머니들의 처참한 이야기다. 남의 일 말하듯 허투루 말할 게 아니다. 대통령은 민족의 자존심을 대표해야 한다. 이런 일은 유엔총회에서 광고할 일이 아니다. 미국 의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오다 의원과 같은 방법이면 되었다. 아프리카 국가가 새삼 영국과 프랑스의 노예무역을 문제 제기하는가? 이런 일은 문학에서 깊이 다루어 온 인류의 심금을 오래도록 울려야 하는 차원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한국과 일본은 현재 갈등을 더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국제 공론화하겠다고 했다.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은 일본인들부터 한국을 방문한 다음 세대가 볼까봐 겁내어 철거해달라고 사정한다. 전쟁 포기를 규정한 1946년 이래의 평화헌법과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내세우는 일본인에게 소녀상은 이 모두를 무색하게 한다.
일본이 가장 숨기고자 하는 위안부 문제를 한국이 세계에 공론화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중국이 일본의 남경학살을 동네방네 떠들지 않아도 세계는 충분히 알고 있다. 이스라엘과 폴란드가 새삼 아우슈비츠를 광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