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와 하토야마 전 총리 그들은 왜 그렇게 다를까?
“하토야마 유키오는 일본에 모처럼 등장한 진솔한 지도자”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하토야마 전 총리가 나루히토 천황이 5월 즉위하면 한국을 방문하여 일제 강점에 사과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한일관계를 전환시킬 수 있는 실로 획기적 제안이다. 2015년 8월 하토야마 총리는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유관순 의사 기념비에 무릎 꿇고 일제 강점기 일본에 희생당한 희생자들에게 사죄했다. 그러나 독일의 빌리 브란트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무릎 꿇은 것 같은 감동은 받기 어려웠다. 이번에 그는 합천에 사는 원폭피해자 할머니에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이런 자세를 취한 것은 집안을 보면 이해가 된다. 그는 동경대학, 스탠포드대학에서 수학했다. 조부는 50년대 최초의 자민당 정권을 담당하였고, 부친은 1970년대 외상을 지낸 정치 명가이다. 처가는 유명한 재벌가 모리나가(森永)다. 하토야마는 일본 역사에서 그림자 역할을 한 공경(公卿)에 해당한다. 이들은 조선의 양반처럼 체면(體面)을 중시한다.
아베 신조 현 총리의 외조부는 2차대전 패전 후 한국전쟁 특수로 일본을 기사회생시킨 기시 노부스케(그 동생은 사토 에이사쿠)로 자민당의 본류다. 아베는 실제 권력을 행사한 무사(武士)에 해당한다. 무사는 명예를 굽히는 것을 패배로 본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국수주의자다. 한국에 대한 유감 표명은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심지어 전쟁 중에 종군 위안부는 어느 나라나 있어 왔다고 하는 자들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에 요구하는 사과의 본질은 진정성이다. 과거 김종필과 같이 물밑 접촉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다. 일본을 모르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고도의 인문적 소양, 역사 지식을 갖춘 번역가를 활용하면 된다. 서툰 영어로 모양새를 낼 필요도 없다.
한미연합사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통역을 통해 업무를 진행하는 것을 참조하면 된다. 한국과 일본은 한자로 서로 통하는 독특한 문명권이다. 이 점을 활용하자. 이런 맥락에서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한국어도 능통하며,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와 같은 사람은 건전한 한일관계 유지에 귀중한 자산이다.
세계에서 한국인만큼 일본인을 잘 아는 국민이 있는가? 미국인들에게 통하는 궁색한 변명이 한국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아베가 바이든 부통령과 30분간 통화했다고 한다. 바이든은 “국제협약은 지켜져야 한다”고 아베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이것을 한국인들은 형님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르는’ 행태로 본다. 이런 행태로는 한국과 일본 간에 진정한 대화는 안 된다. 한·중·일간의 외교는 직업 외교관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전대미문의 평화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깊은 성찰과 고도한 방략, 오랜 투자가 필요하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이 마치 독일과 프랑스처럼 문명국으로 영글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토야마 유키오는 한국의 지사(志士)들 앞에서 위와 같은 제안을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는 일본에 모처럼 등장한 진솔한 지도자다.
저는 ‘개인적으로'(가 아닌게 있겠어요?) 끈질긴 사과 요구의 모양새가 매우 싫습니다. 그게 도대체 누구의 의견입니까? ‘사과 요구’란 ‘사과하면 (반드시) 끄덕 하고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해야 하는것이 예정된(기대되는) 순서 아닌가요? 그럴 자신이 있습니까? 또, ‘사과’란 언제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하는것만이 ‘사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