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 발언 ‘박찬주’와 2차대전 영웅 ‘패튼’

패튼 장군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패튼은 기갑전의 대가다. 야전병원을 순시하다가 부상병 사이에 전투 공포증(fatigue)에 빠진 병사를 보고 격노해서 장갑으로 내려쳤다. 서양에서는 이런 문제에 엄격하다.

독일군 장교는 병사의 넥타이도 교정하지 않는다. 이 사실이 종군기자에 의해 미국 내에 알려지자 사회가 들끓었다. 패튼은 상관 아이젠하워의 힐문과 동료 브레들리의 권유로 그 문제 병사와 그 자리에 있었던 장병에 사과했다.

패튼은 아이젠하워보다 6년 선배다. 아이젠하워가 영국군과의 연합작전을 이끌기에 적절하다는 마샬 참모총장의 건의에 따라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이젠하워를 유럽원정군 사령관으로 임명해서 패튼의 상관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패튼을 지지하고 아들이 그 예하에서 근무하는 것이 믿음직하다는 편지가 패튼을 비난하는 편지보다 9:1로 많았다.

패튼은 원수가 되지 못했다. 그 전에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살았더라도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패튼의 과감한 작전은 전승을 앞당겼다. 패튼은 룬트슈테트의 바스토뉴 포위를 돌파하여 101 공정사단을 구했다. 장군의 최고의 덕과 책임은 승리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걸작이다. 브레들리 의장을 위시한 합동참모본부는 이 작전을 반대했다. 콜린스 육군 참모총장을 맥아더에 보내 작전 취소를 설득하려고 까지 했다. 맥아더는 이를 무릅쓰고 1/5000 확률의 기습에 멋지게 성공했다.

필자가 미군 장성과 대화하면서 “요새 미국인은 그랜트가 남북전쟁, 퍼싱이 1차대전, 패튼이 2차대전의 영웅이라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 미군 장성은 “구분은 고사하고 그런 장군들이 있었던 것도 모를 것”이라고 해서 같이 웃었던 일이 생각난다.

은행나무는 가로수로 좋으나 열매는 냄새가 고약하다. 사단장이 공관병에 떨어진 은행을 치우라고 하지도 못하는가? 박찬주에 대한 비난에 공관병에 감 따는 것도 시키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는 사소한 불평도 군인권센타에 신고한다. 병사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로 인해 군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박찬주의 정무감각은 서툴렀다. 군을 흔드는 인권센터 소장을 삼청교육대에 보내자는 말은 역사인식이 박약했다.

박찬주의 안보상황 판단과 문재인 정부에 대통령은 있어도 통수권자는 없다는 지적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군인권 센터 소장을 삼청교육대 보내라는 말에 사과는 못하더라도 발언은 더 노련했어야 했다. 성우회 등 선배들은 후배 장성을 가르쳐야 한다. 박찬주가 여기저기 정치권에 이용당하고 망신만 당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정치인은 군인을 이용할 따름일 것을 꿰뚫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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