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의 ‘브렉시트’를 어떻게 볼까?

엘리자베스2세 여왕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영국에는 원래 앵글로 색슨족이 살고 있었다. 1066년 잉글랜드에 노르만이 침공하여 색슨족은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로 밀려나서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살아왔다. 이들 지역 사이의 구별은 한국의 지방색은 “저리 가라”다.

스코틀랜드의 수부首府 에딘버러에는 스코틀랜드 의사당이 있다. 스코틀랜드에는 독자적인 화폐가 있는데 런던에 오면 잘 받아주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말은 런던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들다. 우리 제주도 말을 본토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스코트인은 영국에 줄기차게 항거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이를 그린 것이다. 아일랜드는 12세기에 잉글랜드에 정복되었다가 1921년 독립했다. 아일랜드에 혹독한 기근이 들었을 때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잉글랜드의 귀퉁이에는 웨일스가 있는데 색슨족이다. 그들을 위무하기 위해 왕세자를 Prince of Wales로 봉한다.

색슨족이 쓰던 겔릭어를 유산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운동이 있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하여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 되었다. 이래로 UK가 영국의 국호가 되었다. 18세기 이래 식민지 개척에 의해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은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 되었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는 식민지가 아니고 자치령(Dominion)이다. 총독(Governor General)이 과거에는 영국에서 파견되었으나 오늘날에는 현지에서 지명하는 사람이 여왕을 대표하는 명예직이다.

북해에서 석유가 나오면서 스코틀랜드에는 UK로부터 분리 독립운동이 있었는데,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함으로써 분리운동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유럽연합은 1993년 마스트리히트조약 발효 이래 공동체 성격이 강하졌다.

벨기에에 유럽연합 집행부와 간선에 의한 의회가 있으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유럽연합 법원도 있다. 유럽연합 내에서는 국경을 넘으면서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대영제국이 해체되고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이 되었다. 인도도 여기에 속하며 52개국이 구성국이다. 같은 영어 즉 American English가 아니라 Queen’s English를 쓰는 외에 유대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이다. 영국이 아직도 세계정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영국의 외교는 세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영국과 미국의 대서양 동맹이다. 같은 나토 내의 동맹이라도 프랑스와는 다르다. 미국이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 테러를 폭격할 때 프랑스는 미군기의 영공 통과를 거부했다. 둘째는 유럽과의 연대다. 셋째가 코먼웰스를 통한 연대다.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문제를 두고 오랜 동안 혼돈을 거듭해왔다. 캐머런 수상이 브렉시트를 내걸고 집권해서 국민투표까지도 거쳤는데 잉글랜드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박빙이었으나 스코틀랜드에서는 2대1로 반대가 우세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자 스코틀랜드에서는 UK에서의 탈퇴를 주장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이유다. 정치에 간여할 수 없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통치불능’에 빠져든 정치권에 실망을 표시했다. 1926년생으로 올해 94세이며 처칠에서 시작해서 열다섯명의 수상을 거친 여왕으로서 참 안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