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 이기문 별세···“국어와 국사가 민족과 국가의 혼과 맥이다”

이기문 교수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원로 국어학자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가 19일 별세했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에서 이희승, 이숭녕을 이어 한국어의 계통과 역사, 어원과 속담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국어사 개설>을 비롯해 <국어 음운사> <국어 어휘사 연구> 등의 저서를 남겼다.

우리말은 만주, 일본, 터키와 같은 퉁구스어족이다. 이들은 주어 다음에 목적어, 형용사가 오고 술어가 맨 나중에 온다. 중국어는 영어, 불어와 같이 주어 다음에 바로 술어가 온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민족의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결정적으로, 정치, 경제 등 사회과학 측면에서 분석한 것보다 언어, 민속 등 인문학적 측면서 분석한 것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이기문의 형은 국사학자 이기백이다. 이기백은 천관우, 김철준 등과 더불어 서울 문리대 사학과 1회 졸업생인데 1967년에 나온 그의 <한국사 신론>은 이병도를 넘어섰다. ‘한국사 신론’은 교과서적 권위를 갖고 국가고시 출제도 여기에 근거를 둔다. 서강대학이 경제학에서 남덕우 등의 서강학파를 배출하였다고 하면 사학계에서 이기백도 같은 무게를 갖는다.

이기백 교수

이기백은 한국의 사학을 민족주의사학·사회경제사학·그리고 실증사학으로 구분했다. 이 세 학파는 그 입장과 주장이 달랐으나, 모두 일정한 역사적 구실을 담당하였다고 보았다. 민족주의사학은 민족의 독립운동을 정신적으로 뒷받침하여 주었다.

사회경제사학은 전통적인 양반사회의 개혁을 정당화해주고, 실증주의사학은 한국사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시키는데 공헌하였는데 이러한 학문적 전통 속에서 한국사학이 발전하였다고 하면서, 전통의 비판적 계승이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오늘날의 반미 풍조는 1980년대의 5·18광주로부터 시작해서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기고에서 이렇게 썼다.
“국적 없는 외국어 표기만 줄여도 우리말은 살아난다. 타인과의 소통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 편리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디지털시대 신문명을 만들고 기술혁신을 어렵게 만든다. 4차 산업혁명의 변화들을 우리 것으로 만들려면 학문분야의 전문용어들도 우리말로 다듬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지식문화강국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그들은 ‘한류동호회를 꾸려 우리 문화의 전령사 노릇을 하고 있는데 ‘한국어에는 고유의 리듬이 있고, 발성의 매력이 넘치며, 비슷한 뜻의 여러 단어가 재밌다’고 한다.

최정호 박사는 해방과 더불어 국어 공부를 하면서 우리말에는 3음절 낱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아버지, 어머니, 봉숭아, 기러기, 아리랑, 도라지 등···.

가곡 ‘가고파’의 김동진에 의하면 세계민요 대부분이 2박자인데 우리 민요는 예외적으로 3박자라고 한다. 그중에도 그가 사랑한 말로 꾀꼬리를 꼽는다. ‘황금 갑옷 떨쳐 입고서….제 이름을 제가 불러 이리로 가면 꾀꼴 저리로 가며 꾀꼴’에서 ‘새타령’을 묘사하고 소프라노 조수미의 콜로라투라는 마치 꾀꼬리와 고음을 다투는 듯하다고 묘사한다.

국어와 국사가 민족과 국가의 혼과 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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